때는 지난 2022년 11월...
허진호 프로 : 본부장님 저 하루 휴가 쓰겠습니다
본부장님 : ㅇㅇ 어디가게?
허진호 프로: 지스타 시즌이라 내려갔다 오려고요.
본부장님: 벌써 지스타야? 우리 지스타 가야돼.
허진호 프로: !?
그렇게 이노베이션은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지난 1995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게임대전 (KAMEX) 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던 대한민국 최대의 게임쇼는 2005년 'G-STAR'라는 이름을 얻고 글로벌 게임쇼로 발돋움했습니다. 하지만 '국제 게임 전시회'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간 지스타는 '볼 것 없는 전시회'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죠. 게임 쇼의 본질은 게임. 다양한 게임을 체험할 수 있고, 신작 게임이 발표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지스타에서는 내노라하는 게임들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2021년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죠. 코로나바이러스감증-19의 재유행과 신작 게임의 부재로 인해 국내에서 3N이라고 불리는 대형 게임사들(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그리고 글로벌 게임사들이 불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이들의 불참 사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하나로 요약하면 "우리는 보여줄 게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절찬리에 출시한 신작이 망했거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근무 환경이 바뀌고 제도가 바뀌면서 신작의 개발과 공개가 잇따라 연기된 까닭이 큽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는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많이 바꾸어 놓았고, 게임 역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제되며 모여 놀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만날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게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오던 '현실 세계의 도피처'라는 평가가 긍정적인 평가로 변모하는 순간이었죠. 2022년 지스타는 그러한 흐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작년 11월에 개최된 지스타 2022의 주제는 "다시 한 번 게임 세상으로" 였습니다. 작년의 설움을 딛고 화려해진 볼거리로 돌아왔죠. 2021년 행사와 비교해 규모는 두배로 늘어 총 43개국에서 987개 회사가 참여했고, 총 부스 규모는 2100부스에 달했습니다. 4년만에 넥슨이, 3년만에 넷마블이 참석하여 국내 3N 중 2N이 참석하는 게임쇼가 된 것입니다.
애물단지에서 하나의 문화로 진화한 게임
코로나 시대에 게임사들이 재택근무를 위시한 변화된 환경에 대응하며 수모를 겪는 동안, 소비자 시장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것 중에 하나를 꼽자면 '게임에 대한 인식'일 것입니다. 대중이 게임산업에 가진 선입견은 '2030 남성 위주의 게임' 그리고 '4050 남성 위주의 리니지' 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선정성은 심심치않게 도마 위에 올랐고, 어딘가에서 범죄라도 벌어지면 그 사람이 폭력적인 게임을 했는지 알아보는 일이 연례 행사처럼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집 안에서 할 것 없는 사람들은 '게임'이라는 카테고리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닌텐도 <모여봐요 동물의 숲> 그리고 <젤다의 전설>에 열광했습니다. 하드코어 게이밍 위주로 구성되어 있던 게임 산업은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하기 위한 라이트한 게이밍으로 발전하여 장르적 다양성을 추구하게 되었죠. 때마침 불거진 메타버스 열풍으로 인해 '사실 게임은 진정한 메타버스였다'라는 시선도 생겨났습니다. 게임과 함께 자란 젊은 부모 세대는 자신들이 하던 게임을 아이들과 함께 즐기며 '가족 행사로써의 게임'이라는 면모를 새로 발굴해내기도 했죠.
게임 하면 빠질 수 없는 음악을 선두로 하여 게임을 '문화'의 영역으로 이끌려는 시도도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넥슨은 <네코제>라는 행사를 통해 지난 몇 년간 게임음악 콘서트를 꾸준히 개최해 왔고, <카트라이더>의 '어비스' 테마 출시를 기념해서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던 'AKMU'와 협업하여 신규 사운드트랙 'Drift'를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블루 아카이브>의 게임 BGM을 세션이 연주하는 '사운드 아카이브' 연주회를 열기도 했고,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아이머게이머' 챌린지 캠페인의 일환으로 게임 음악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죠. 얼마 전에는 포켓몬코리아가 포켓몬의 음악으로 콘서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지스타 2022에서도 게임을 하나의 '문화'로 공유하려는 시도가 이어졌습니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을 만든 퀀틱드림의 데이비드 케이지 CEO, '몬스터 헌터'를 만든 츠지모토 료조 프로듀서 등 글로벌 게임사들의 키노트 강연이 이어졌으며, 행사장 내에서는 게임 속 캐릭터들을 흉내내는 '코스튬플레이'를 통해 게임 세상 속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에는 지나친 선정성으로 비판을 받았던 코스튬플레이와는 다르게, 이번 지스타 2022에서는 미풍양속을 준수한(?) 건전한 코스튬플레이어들이 관람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습니다.
멀티플랫폼 게임의 대두
한동안 국내 게임 시장은 모바일 위주였습니다. 대부분의 신작 게임은 모바일 시장을 타겟하고 있었고, 내노라하는 개발사들 역시 모바일 게임 신작에 집중했죠. 같은 시리즈 작품이 모바일과 PC로 출시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같은 게임은 아니었고 하나의 IP를 기반으로 하는 스핀오프에 가까웠습니다. 지스타에서 시연된 <마비노기 모바일>이 그런 케이스죠. 마비노기라는 PC게임 IP를 가지고 모바일로 확장하여 '마비노기'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별도의 게임을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스핀오프 작품을 통한 플랫폼 확장에서 벗어나 게임 자체가 다양한 플랫폼을 지원하는 '멀티플랫폼'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넥슨이 이번 지스타에서 시연한 4종의 게임 중 3종은 멀티플랫폼 게임이었습니다. PC,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 모바일에서 모두 즐길 수 있는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PC와 PlayStation에서 즐길 수 있는 <퍼스트 디센던트>, STEAM을 통해 PC에서, 닌텐도 e숍을 통해 닌텐도 스위치에서 즐길 수 있는 <데이브 더 다이버>가 그 주인공이었죠. 현재 스팀에서 플레이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넥슨의 <THE FINALS> 역시 PC, XBOX, PlayStation을 동시에 지원하고, 던전앤파이터 IP를 기반으로 하는 <프로젝트 오버킬>도 PC와 모바일을 모두 지원하죠.
넥슨 뿐만이 아닙니다. 넷마블이 개발하고 지스타 2022에서 시연한 <아스달 연대기>, <파라곤 디 오버프라임>, <나 혼자만 레벨업: ARISE> 역시 PC와 모바일 크로스플레이가 지원됩니다. 이렇게 게임사들이 우후죽순 멀티플랫폼에 대응하는 게임을 개발하는 이유는 세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멀티플랫폼으로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 생겼고, 멀티플랫폼을 통해 플레이어를 더 오래 게임에 잡아둘 수 있고, 세계 시장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죠.
멀티플랫폼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 생기다
우선 게임엔진의 발달로 인해 다양한 플랫폼에 게임을 컨버전하기 용이해졌습니다. 게임을 위해 많이 사용되는 Unity 플랫폼과 Unreal Engine은 모두 멀티플랫폼을 지원합니다. 예전에는 각 플랫폼에 게임을 배포하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개발툴로 대응해야만 했습니다만, 이제는 클릭 몇 번만으로 (실제로는 이것보다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다양한 플랫폼에 게임을 손쉽게 배포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플레이어를 더 오랜 시간 게임에 잡아둘 수 있다
또한, 멀티플랫폼 전략을 구사하게 되면 더 많은 사용자를 게임에 붙잡아 둘 수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모바일 게임 이용 시간은 주중 86.8분에서 81.1분으로, 주말 123.1분에서 117.9분으로 소폭 감소했습니다. 반대로 콘솔게임의 경우는 주중 53.3분에서 68.8분으로, 주말 101.5분에서 110.3분으로 증가했죠. 코로나19를 비롯한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플랫폼별 인기는 변화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PC방 산업이 어려움을 겪으며 PC게임의 인기가 다소 주춤했던 것, XBOX와 PlayStation의 신제품 출시, 가상화폐 붐과 반도체 생산 이슈가 겹치며 PC 부품 가격이 극적으로 상승, 그래픽카드를 구입하기 위해 200만원씩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 되며 콘솔 시장이 드라마틱하게 성장 (2020년, 콘솔 시장은 국내에서만 57%의 성장률을 기록) 했던 것과 같이 플랫폼은 시대적인 영향을 받죠. 이러한 시대적인 영향에 따라 다양한 플랫폼에 대응할 수 있는 다변화된 포트폴리오를 구축, 유저가 상황에 따라 게임을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세계 시장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처럼, 전미(북미 및 남미) 지역과 유럽에서는 콘솔 게임이 시장의 주류입니다. 데스크톱이 없는 집은 있어도 플레이스테이션이나 XBOX를 가지지 않은 집을 찾기는 어렵다고 하죠. 반면, 개발도상국이 다수 위치한 아시아 및 아프리카 지역은 경제 상황이나 기술 여건, 열악한 전력망 인프라 등의 이유로 데스크톱이나 콘솔이 자리잡기 어려워서 모바일 위주 시장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기존 국내 게임사들은 모바일과 PC 위주 전략을 펼쳤지만, 지역별로 많이 사용되는 플랫폼이 다르기 때문에 모바일로는 아시아 지역 이상을 공략하기 어려웠고, PC로는 내수와 중국 시장을 제외한 나라들을 공략하기 어려웠던 현실입니다. 콘솔이 핵심 Player로 작용하는 시장에서 게임을 한 번만 성공시켜도 해외 매출을 크게 신장시켜 글로벌 게임사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게임사로 발돋움하고 IP의 확장을 꾀하려면 언젠가는 콘솔 게임에 대응해야 했던 상황이죠. 우리나라 게임사들도 약 10여년 전부터 콘솔산업 대응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 해왔고, 그 노력이 이제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멀티플랫폼을 넘어 크로스플레이로
하지만 멀티플랫폼 게임이라고 해서 모든 유저들이 게임을 같이 즐길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게임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밸런스'인데, 게임을 조작하는 조작계가 서로 다르면 밸런스가 깨지기 때문이죠. PC에서는 키보드와 마우스 (이하 키마)를 이용하고, 콘솔은 게임패드를, 스마트폰은 터치스크린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조작 방식인데요, 게임에 따라서는 특정 조작계로 조작하는 것이 더욱 편리하거나 더욱 높은 점수를 낼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모바일 유저들이 PC의 키마 조작을 이기기 어려웠던 것이 현실입니다. 화면 크기, 조작의 정밀성, 자유도, 사용할 수 있는 단축키의 유무 등 다양한 변수들이 영향을 미쳤죠.
따라서 다수의 개발사들은 멀티플랫폼 전략을 구사하더라도 콘솔, PC, 그리고 모바일의 서버를 분리하여 운영했습니다. 대표적인 멀티플랫폼 게임인 PUBG (배틀그라운드) 역시 PS4/XBOX와 PC의 서버를 분리하였고, 음악게임 DJMAX RESPECT V 역시 키보드와 게임패드 조작계 차이로 인해 기본적으로는 XBOX와 PC를 분리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콘솔, Cloud Gaming 솔루션들이 공식적으로 키보드와 마우스 입력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입력 방식의 제약이 해소되고, AI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네트워크 예측을 통해 사용자의 위치나 행동을 실시간으로 보정할 수 있게 되면서 점차 PC와 콘솔의 서버를 통합 운영하는 사례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넥슨이 지스타에서 시연했던 <카트라이더 드리프트>입니다.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는 PC, 콘솔, 모바일 유저가 같은 프로필을 공유하고, 같은 서버 내에서 경쟁합니다. 과거에는 게임을 하기 위해 집에 돌아와 PC나 콘솔을 켜 게임에 접속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사용자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요소들이 너무 많고, 게임을 하기 위해 PC나 콘솔을 켜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진입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같은 IP를 기반으로 디바이스를 넘나드는 연속성 있는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죠. 게이머들이 흔히 '숙제'라고 부르는 일일 퀘스트는 폰으로 접속하여 해결하고, 친구들과 본격적으로 게임을 즐기고 싶을 때는 PC를 켜는 것입니다.
다양한 IP와의 컬래버레이션 vs 오리지널리티 높은 자체 IP
'IP' (지식재산)에 접근하는 게임사들의 자세 차이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IP를 활용한 <넷마블>과 게임을 위해 개발한 '오리지널 IP'로 승부를 보는 <넥슨>의 전략 차이가 대표적이었죠. 원작이 있는 IP를 기반으로 하지만, 마개조 수준으로 뜯어고쳐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한 <네오위즈>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넷마블 - 안정적인 기존 IP를 기반으로 한 게임 측면으로의 확장
넷마블은 총 4개의 게임을 출품했는데, 그중 3개가 원작이 따로 있는 IP입니다. 동명의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나 혼자만 레벨업: ARISE>, 그리고 드라마 '아사달 연대기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아사달 연대기>, 에픽게임즈에서 출시했던 '파라곤'을 기반으로 하는 후속 게임 <파라곤 디 오버프라임>이 그 대상이죠.
웹툰, 웹소설이나 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을 출시하면 원작의 팬들까지 게임에 포섭할 수 있어 성공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성공적인 IP의 외연 확장 케이스로, 게임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이 결정되기까지 했죠. 원작의 팬을 게임과 애니메이션까지 각각 확산시킬 수 있으니,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오리지널 IP 대비해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면서도 성공 가능성을 높게 점칠 수 있습니다.
저는 웹소설이나 능력자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웹툰 원작을 본 적이 없습니다만, <나혼자만 레벨업: ARISE>를 시연해보니 원작을 몰라도 충분히 게임에서 제시되는 정보만으로도 게임을 따라갈 수 있을 것 처럼 보였고, 타격감이나 전투 액션도 조작하기 편리하고, 타격감이 좋았습니다.
넥슨 - 우리의 미래는 새로운 슈퍼IP에 있다
반면 넥슨은 '자체 IP'에 공을 들이는 모습입니다. 넥슨의 <Phase 3>는 슈퍼 IP 10종 개발과 다양한 장르 도전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Phase 2>까지는 검증된 IP를 이용한 플랫폼 확장에 주력해 판을 키우고, 판이 커지면 2023년부터 신규 IP를 투하하여 글로벌 게임사로 발돋움한다는 의도입니다. 지스타에서 시연된 넥슨의 게임은 4종, 2개의 기존 IP와 2개의 신규 IP입니다. <카트라이더>를 원작으로 하는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그리고 <마비노기>를 원작으로 하는 <마비노기 모바일>은 검증된 대형 IP이고, 루트 슈터 장르의 <퍼스트 디센던트>와 넥슨의 서브 브랜드 '민트로켓'에서 제작하는 <데이브 더 다이버>는 새로 시장에 내 놓는 IP죠.
특히 넥슨의 해양탐사 게임인 <데이브 더 다이버>는 넥슨 게임답지 않다는 평가를 받으며 10월 27일 얼리엑세스로 오픈된 이후 나날이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미리 해보기'가 가능한 게임인데도 스위치 플랫폼으로 시연한다는 새로움 때문인지 지스타 현장에서 게임을 체험하려면 3시간 가까이 기다려야만 했죠. 기다려 볼까 하다가 집에 돌아와서 스팀에서 미리 해보기를 통해 플레이해보았는데요, '도트 장인' 넥슨 아니랄까봐 비주얼이 아름답고, 잔잔하게 진행되어 앉은 자리에서 5시간이 금세 지나가버렸습니다.
대형 IP는 말 그대로 '도박'에 가깝습니다.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오리지널 IP를 시장에 출시했는데 반응이 뜨겁다면, 엄청난 대박과 함께 향후 몇 십년을 먹여살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져다주지만, 쪽박일 경우에는 다시 활용하기도 어려운 관짝으로 쳐박히는 결말만 존재할 뿐이죠. 넥슨은 과거부터 이런 도박을 자주 해 온 회사였습니다. 마리오카트에서 영감을 얻은 카트라이더 같은 '표절 의혹 대형 IP'에 묻히는 감이 있지만, 넥슨은 프라시아 전기나 베일드 엑스퍼트 같은 오리지널 게임도 자주 만들어 왔거든요. IP는 잘 만들어 두고 다양한 개발 관련 문제들과 함께 사업성을 증명하지 못해 서비스를 종료한 <야생의 땅 듀랑고>도 IP 평가는 매우 좋았죠. 이런 저런 비판도 많이 받는 회사입니다만, 한국 게임을 상징하는 회사가 자체 IP에 힘을 쏟는 모습이 매우 보기 좋습니다.
네오위즈 - 우리는 강력한 한 방을 노린다
네오위즈는 PC나 콘솔 게이머들에게는 그렇게 인상깊지 않은 이름입니다. 네오위즈의 주요 사업 영역은 포커나 맞고 같은 웹 보드게임이고, 메이저 장르라고 보긴 다소 어려운 '음악게임'에서 잔뼈가 굵은 기업이기 때문이죠. 그런 네오위즈가 2022년부터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음악게임 장르의 적극적인 확장, 인디게임 발굴 및 유통을 통한 신규 시장 탐색과 더불어 대형 액션 게임인 <P의 거짓>을 개발하며 다시 화려하게 게임 무대 위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오위즈는 게임스컴 기대작 3개 부문에서 수상한 <P의 거짓> 플레이 데모를 선보였습니다. <P의 거짓>은 AAA급 콘솔 소울라이크 게임으로 '피노키오'에서 설정을 가져온 게임인데요, 피노키오와 제페토 박사의 설정만 가져왔다 뿐이지 키 비주얼이나 시나리오를 완전히 재탄생시킨 모습입니다. 기존 잔혹동화를 네오위즈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소울라이크 게임으로 완성해 낸 것이죠. 마치 같은 '피노키오'의 설정을 원작으로 하지만 시나리오와 요소를 포스트-아포칼립스 스타일로 재해석한 연제원 작가의 2012년 웹툰, <제페토>와 궤를 같이하는 모습입니다. 현장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플레이해보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렸고, 플레이하고 나온 사람들도 대부분 만족했습니다. 20분간 시연해보니 장르의 어려움과 악랄함이 너무나도 잘 느끼는 구성이라고 느꼈습니다. 시연을 하는 그 짧은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보수적으로 안전한 접근을 취한 넷마블, 공격적으로 자체 IP를 확장하는 넥슨, 중간 어딘가에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네오위즈까지 대형/중견 게임사들의 각자 전략이 매우 다른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외에도 데드스페이스의 정신적 후속작인 카카오게임즈의 '칼리스토 프로토콜' 역시 현장에서 인기가 좋았습니다. 기대하고 있던 게임이라 줄을 서볼까 했는데, 대기가 3시간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에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죠. 지스타가 끝난 이후 올해 본 게임이 출시되었는데, 다양한 버그와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콘텐츠, 불편한 게임성 등 다양한 이유로 평가가 썩 좋은 편은 아니더라구요.
회사별로 뚜렷하게 나타나는 수익 모델의 차이
특히 지스타 2022에서는 게임의 수익모델을 두고 회사별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그 중심에는 P2E (Play to Earn)가 있었죠. P2E는 게임 플레이를 통해 돈을 번다는 개념인데,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니고, 온라인게임과는 떼놓을 수 없는, 전통의 관계를 가진 아이템매니아 혹은 아이템베이에서 볼 수 있었던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상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나 재화를 현금화해서 판매할 수 있는 공식적인 채널을 어떻게 지원하느냐를 두고 회사별 접근법이나 스탠스가 달랐던 것이죠.
넥슨 - P2W와 P2E가 강조되지 않는 게임을 만들다
그동안 지나친 P2W (Pay to Win) 방식을 추구한다고 게이머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던 넥슨은 P2W/P2E (Play to Earn) 요소를 게임에 적용하는데 극히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지스타 2022에서 선보인 게임들에서는 일절 P2E 요소를 찾아볼 수 없었죠. 오히려 수익화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게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죠. 일회성 구매 이외에 수익모델이 명확하지 않은 <데이브 더 다이버> 콘솔 플레이가 가능하게 출시되어 P2W 요소를 적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더 퍼스트 디센던트>, 시작부터 P2W는 없다고 선언한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등 넥슨은 '게임의 본질'에 집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Big&Little'이라고 불리는 전략입니다. 대작 게임과 소규모 게임을 동시에 개발 및 런칭하여 빈 틈 없이 게임 라인업을 투 트랙으로 가동하겠다는 것이죠.
물론 지스타 행사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별개로 넥슨도 아예 손을 놓고 있진 않습니다. 넥슨도 메이플스토리 IP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메이플 유니버스'라는 게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만, 인터뷰를 통해 "메이플 유니버스는 P2E를 지양한다" "기존 P2E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 "P2E는 돈을 벌려 접근하는 '작업장' 유저를 양산하여 게임의 본질적 재미를 해친다" "모바일식 BM을 콘솔에 적용하는 일은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라며 연일 P2E나 블록체인의 부정적인 면모와는 거리두기에 나서는 모양새입니다. 그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사로써 수익모델과 관련해 많은 비판을 받아온 넥슨은 이전과 달리 '게이머를 위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P2E와 같은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수면 위에서 추진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위메이드 - P2E는 미래, 반드시 성공할 것
위메이드는 조금 다릅니다. 위메이드는 지스타 부스 전체를 P2E 테마로 꾸몄습니다. 위메이드 대표가 인터뷰를 통해 "3년 안에 모든 게임이 토큰과 NFT를 도입할 것"이라고 자신한 것과 궤를 같이 하죠. 위메이드는 토큰 경제가 결합된 게임은 현실 세계와 결합된 보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재미있는 게임을 더욱 재미있게 만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위메이드가 굉장히 넓은 부스면적을 확보했음에도 위믹스 코인 생태계를 설명하는데 공간을 많이 할애한 나머지 위메이드의 게임은 <나이트 크로우>와 <레전드 오브 이미르> 단 두개 밖에 만나볼 수 없었죠.
물론 이같은 위메이드의 주장은 지스타가 종료된 직후 DAXA가 위메이드의 코인, 위믹스를 상장 폐지하기로 결정하며 논란이 되었습니다. 쟁점은 유통량을 속이고 공시를 거짓으로 진행했다는 것이었고, 이 결정에 따라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4개 거래소에서 진행되던 위믹스 코인의 거래가 중단되었습니다. 물론 2023년 2월에 코인원을 통해 위믹스 코인의 원화거래가 재개되며 위메이드는 한 숨 돌린 모양새입니다만, 국내에서는 아직도 P2E 방식이 규제로 인해 막혀있는 상황이고, 테라-루나 사태를 겪으며 가상자산에 대한 대중의 기대와 신뢰가 무너진 상황이기 때문에 얼마나 이들의 전략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죠.
서브컬처 게임의 부상
또 하나의 흥미로웠던 포인트는, 흔히 서브컬쳐 (Sub culture, 하위문화)라고 불리는 애니메이션 풍의 게임들이 시장에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러한 트렌드는 중국 개발사들이 일본 애니메이션 풍의 게임으로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시작되었죠. 2016년 XD Global의 '소녀전선'이라는 게임이 출시되었을 때만 해도 시장 반응이 파격적이지 않았고, 2020년 중국의 미호요 (現 호요버스) 에서 개발한 '원신'이 처음으로 나왔을 때만 해도 '젤다의 전설'을 카피한 게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원신은 나날이 승승장구하며 글로벌 기준 가장 큰 게임 IP로 자리를 잡았고, 호요버스를 순식간에 글로벌 게임사로 만들어 주었죠.
국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흐름이었습니다. 한동안 국내 모바일 게임 지표는 리니지로 시작해서 리니지로 정리되고 있었죠. 그러나 리니지라이크 게임들의 과도한 현질 유도와 방치 플레이, 비슷비슷한 게임성에 질린 유저들이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장에 등장한 '원신'은 국내에서도 돌풍을 일으켰죠. '원신'을 시작으로 수많은 서브컬쳐 기반의 게임들이 상위권 차트를 휩쓸기 시작한 것입니다. 국내 게임사도 이러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합류했습니다. 넥슨은 자회사 넷게임즈 (現넥슨게임즈)의 김용하 PD를 주축으로 <블루 아카이브>라는 서브컬쳐 기반의 수집형 RPG 게임을 출시했고, 카카오게임즈는 일본의 사이게임즈에서 개발한 '경마'를 소재로 한 서브컬쳐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더비>를 국내에 퍼블리싱했습니다. 두 게임 모두 국내 양대 마켓 상위권을 휩쓸며 모바일 게임 시장이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었죠.
이러한 흐름은 지스타 2022의 2관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관에 들어서면 네오위즈 부스와 거의 비슷한 사이즈로 부스를 차리고 신작 게임인 '붕괴: 스타레일'과 '젠레스 존 제로 (zzz)를 홍보하는 호요버스를 볼 수 있었고, 그 옆에는 <니케: 승리의 여신> 이라는 서브컬쳐 건슈팅 RPG 게임을 퍼블리싱한 '레벨 인피니트' (개발: 시프트업)의 부스를 볼 수 있었죠. 두 부스 모두 코스튬플레이 이벤트라던가, 토크쇼 등 다채로운 이벤트들이 계속되어 발 디딜 틈 없이 붐볐습니다.
지스타 2관은 1관에 비해 규모는 작았지만 1관에 버금가는 인파가 몰렸습니다. 호요버스의 게임을 체험하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섰고, 지스타 현장에서 판매하는 굿즈를 받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소규모였던 서브컬쳐 게임들이 양지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다만 <니케: 승리의 여신> 의 선정성 검열 <블루 아카이브>의 게임물관리위원회 등급 상향 이슈와 같이 항상 서브컬쳐 게임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선정성 이슈를 어떻게 해결할지 게임사들과 사회, 그리고 게임물관리위원회의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B2B보다는 B2C, 글로벌보다는 국내 위주였지만, 그래도 게임 전시회는 공고하다
지스타는 2022년 행사를 통해 게임의 시대는 아직 견고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대형 업체들이 참가하여 전시회의 체면을 살렸고,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다양한 중소 개발사들도 참가하여 창의적인 게임들을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코스튬플레이 이벤트, 저명한 유튜버들과 업계 관계자들의 방송 및 강연, 다양해진 게임 시연과 관람객 참여형 이벤트, 게임 개발의 뒷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세션까지 지스타는 "게임 쇼는 존재해야 한다"는 이유를 잘 보여주었죠. 변해가는 시대의 트렌드도 잘 보여주었습니다. 멀티플랫폼 및 크로스플레이 게임의 확대, 대형 IP의 세대교체, 서브컬쳐 게임의 부상 등 굵직한 트렌드가 쇼의 주제를 관통했죠.
지스타 2022의 핵심은 B2C 전시였습니다. 더 이상 오프라인 바이어 비즈니스가 전시회의 핵심이 아니게 되었죠. 게임 산업을 포함한 소프트웨어 산업이 전반적으로 SaaS (Software as a Service)로 이동하며 수익구조가 재편되었고, 기업간의 협업 관계도 달라졌습니다. 게임을 개발하고, 마케팅하고, 운영하는 주체의 단계에 따라 구간 수익화 업체가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기획 단계, 개발 단계, QA 단계, 현지마케팅까지 전부 내재화하거나, 원스톱 솔루션을 통해 진행되고 있는 형국입니다. 지스타의 B2B 입장권 가격도 크게 올랐고, B2B 전시장 자체도 예년보다 덜 돋보이는 구성으로 진행된 것을 감안하면 조직위원회는 행사의 상징성을 고려하여 B2B 대신 B2C에 힘을 쏟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B2C 전시도 아쉬움이 아예 없진 않았습니다. 명색이 'Global Game Exhibition' 인데 글로벌 게임사들보다는 국내 게임사들 위주의 전시가 많았습니다. 그동안 3N에 의해 주도되어 오고 있던 시장이 STEAM의 확산 등으로 인해 인디게임까지도 확장되는 상황인데, 게임 산업에 대한 수요나 잠재력이 높은 대한민국의 특성을 감안하여 더욱 많은 외국 업체들, 특히 중소규모 업체들을 유치하여 새로운 종류의 게임을 선보여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올해 지스타는 조금 더 기대해봐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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