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부산 벡스코에서 국제 게임 전시회, 지스타 (G*STAR)가 개최되었습니다. 지스타는 항상 수능이 끝난 이후에 개최되기 때문에 사람이 좀 적을 주중에 내려갔다 오고 싶었는데, 공교롭게 LA 출장을 나가는 날짜와 겹쳐서 11/17 금요일 귀국하자마자 바로 부산으로 내려가서 토요일과 일요일에 참관하고 돌아왔습니다. 올해 지스타의 주제는 <Expand your Horizon> 이었고, 지평선을 넓힌다는 슬로건에 걸맞게 이번 행사에서 보여진 한국 게임의 모습은 그동안과는 다른 모습들이었습니다. K-게임 시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시죠.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점령한 시연대는 이제 옛날 이야기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나타나면 업계는 그 흐름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2010년, 갤럭시와 아이폰이 세상을 집어삼키기 시작하며 게임 시장도 모바일이라는 흐름을 놓칠 수 없었죠. 그동안 '가구당 하나 소유하는 PC'가 활동 무대였다면, '모두가 하나씩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을 대상으로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니 가능성이 얼마나 무궁무진하겠어요. 그러나 모바일 게임은 조금 과했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보다는 방치하고 자동사냥을 돌리는 게임들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없는 직장인 게이머들을 위해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구조의 BM이 등장하며 모바일 게임은 게임의 본질과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게이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기간, 실제로 유저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간이 짧은 모바일 게임의 특성상 '치고 빠지기 전략'으로 게임이 운영되기 시작했고, 중국 개발사를 필두로 한 양산형 게임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며 이같은 비판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한 때는 지스타가 모바일 게임 전시회냐는 비판을 받은 적도 있죠.
그러나 작년부터는 조금씩 다른 모습이 연출되기 시작합니다. 시연대에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깔리는 대신, 많은 부스에서 PC와 모니터가 깔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올해도 모바일 게임 시연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회사들의 신작 게임이 콘솔 혹은 PC로 구동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전보다 장비의 다양성이 훨씬 커졌습니다.
멀티플랫폼, 크로스플레이, 다변화된 장르
2022년 지스타를 참여하고, 다수의 게임사들이 하나의 게임을 다양한 플랫폼으로 개발하는 '멀티플랫폼'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씀드렸던 바가 있습니다. 작년에 넥슨에서 시연한 4개의 게임 중 3개가 멀티플랫폼 게임이었고, 넷마블이 시연했던 3개의 게임 모두 PC와 모바일의 멀티플랫폼을 지원했었죠.
네오위즈 'P의거짓' | 플레이스테이션 (4,5) / XBOX (ONE, S, X) / Windows (Steam, Microsoft Store) / MacOS |
크래프톤 '인조이' | 플레이스테이션5 / XBOX (S, X) / Windows (Steam, Microsoft Store) |
넷마블 '데미스 리본' | Windows / iOS / Android |
넷마블 '일곱 개의 대죄: Origin' | Windows / iOS / Android / 플레이스테이션5 |
NC소프트 '배틀 크러쉬' | Windows / iOS / Android / Nintendo Switch |
원더포션 '산나비' | Windows / Nintendo Switch |
빅게임스튜디오 '브레이커스' | Windows / iOS / Android |
올해는 상황이 더 좋아졌습니다. 대작 게임 뿐만이 아니라 인디게임들까지 다양한 플랫폼으로 출시되며 고객 저변을 확대하고 있는 모습이었거든요. 특히 네오위즈가 작년 지스타에 들고 나왔고, 올해 정식으로 출시하여 대 호평을 받고 있는 P의 거짓은 플레이스테이션, XBOX, Windows, MacOS까지 지원하며 폭넓은 유저를 확보했습니다.
장르적 다양성도 더해졌습니다. 그동안 국내 게임사들의 '신작'은 대부분 전부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MMORPG였고, 리니지라이크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변이 감지됩니다. 대한민국 게임대상 6관왕에 등극한 네오위즈 <P의거짓>은 '소울라이크' 게임이며, 스팀에서 큰 인기몰이중인 <데이브 더 다이버>는 '경영 시뮬레이션과 어드벤처를 혼합한 형태' 입니다. 두 게임 모두 글로벌에서 메가 히트를 기록했죠. 다른 게임사들도 글로벌에 대응되는 다양한 장르의 대작 게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 출시된 넥슨의 <더 파이널스>는 FPS 장르이고, 출시 예정인 <더 퍼스트 디센던트>는 루트 슈터 장르입니다. 심지어 크래프톤이 선보인 <인조이>는 심즈와 같은 '인생 시뮬레이션' 장르죠. 한국 게임에서 본 적 없는 장르들의 습격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지스타에서 관측된 이런 건강한 흐름이 매출로 이어져 게임사들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는 2024년이 될 것 같습니다.
K-심즈 나가신다, 인생 시뮬레이션 <인조이>
<심즈>는 글로벌에서 가장 유명한 인생 시뮬레이션 장르 게임입니다만, 그동안 '심즈'를 대체할 수 있는 게임은 없었습니다. 수많은 심즈의 대체제들은 인디게임이었고, 개발력의 한계로 숱한 지연을 반복하며 게이머들의 기다림만 커져갈 뿐이었죠. 그러던 중 이 게임이 혜성같이 등장했습니다. 블루홀 스튜디오가 크래프톤에 인수되기 전부터 개발하던 '인조이'는 언리얼엔진5 기반 현실적인 그래픽이 특징인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인생 시뮬레이션'이란 게임 속 세상에서 현실 세상에서 가능한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게임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메타버스에 가까운 셈이죠.
이 게임 속 세상에서는 플레이어가 '조이'라 불리는 게임 속 캐릭터들을 실제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조이의 욕구와 성장을 함께하고, 조이의 집을 꾸미고, 도시를 꾸밀 수 있죠. 조이는 배고픔, 청결함, 수면, 용변, 즐거움, 사교, 인정, 활력 총 8가지의 욕구를 가진 존재입니다. 플레이어들인 이러한 욕구를 적재적시에 해결해주며 조이가 게임 속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죠.
로컬, 클라우드, 그리고 다시 로컬 - 게이밍 디바이스의 진화
예전부터 PC를 작게 만들려는 시도는 이어져왔지만, 기술의 한계로 인해 '넷북'같은 애매한 물건만 탄생하여 소비자층으로부터 외면받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들은 크기가 작다보니 빌드 퀄리티도 조악했고, 성능도 좋지 못하면서 제조 단가만 높았죠. 그러나 2021년부터 AMD가 노트북을 위한 고성능 Ryzen APU 칩을 공급하기 시작하며 작은 폼팩터에서도 고성능을 낼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고, 중국의 소규모 제조사부터 스팀의 밸브, 노트북 컴퓨터를 제조하던 레노버와 에이수스까지 다양한 제조사들이 게이밍 UMPC (Ultra Mobile PC) 개발에 착수하며 시장이 확 커졌습니다.
클라우드 게이밍에 대한 회의가 싹트기 시작하는 시기와 UMPC 폼팩터의 재등장이 묘하게 맞물렸습니다. 게임을 고사양의 하드웨어 없이도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출시된 클라우드 게이밍이었지만, 정작 고사양의 하드웨어 없이 로컬 머신을 단순 실행 경로로만 사용한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네트워크를 통해 다량의 게임 데이터를 주고받다보니 필연적으로 네트워크 의존도가 높아졌고, 지연속도 문제가 발생한 것이죠. 그러다 보니 '각 잡고 게임하는' AAA급 게임에는 클라우드 게이밍이 아직까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고, 산업계는 '고사양 로컬 머신'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지스타는 태생적으로 '대작' 게임이 소개되는 자리입니다. PC 게임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한데요, 좋은 PC에서 자사의 게임이 낼 수 있는 최대의 퍼포먼스와 그래픽을 보여주며 게이머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죠. 그러나 최근 지스타에서는 게이밍PC 대신 게이밍 노트북을 활용하여 시연을 하는 모습이 보였고, 게이밍 UMPC를 이용한 시연도 눈에 띄었습니다. 작년, 밸브의 스팀덱이 발매된 이후 지스타의 중소/인디게임 부스에는 스팀 게임을 스팀덱으로 시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올해는 AMD가 레노버의 '리전 고'라는 UMPC를 들고 나왔습니다. 리전 고는 8.8인치 화면 크기를 가진 UMPC로, 다른 UMPC들보다 물리적으로 크고 무거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컨트롤러를 분리하여 컨트롤러만 들고 게임할 수 있는 경험을 추구한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최고의 게이밍 환경은 아니지만, 가능한 최고의 환경을 확보하고 싶어하는 게이머들의 니즈에 부합하는 제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제품들에 대응되는 게임들도 속속들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키보드와 마우스 플레이만을 고려하고 만들어져 게임패드를 사용하면 칼같이 유저 밴을 때렸던 K게임은 이제 그만, 게임패드와 UMPC를 이용해도 쾌적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들이 늘어났죠.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 원더포션의 <산나비> 등 다양한 게임들이 게임패드를 공식적인 조작계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변화된 게이머들의 라이프사이클과 장비에 대응하기 위해 지옥같던 K-게임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원신라이크의 급격한 부상 - 카툰 렌더링 방식 서브컬쳐 게임은 더 이상 '서브'가 아니다
2022년 지스타에서는 서브컬쳐 게임의 달라진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원신>, <붕괴: 스타레일>, <젠레스 존 제로>를 홍보하는 호요버스 부스는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시프트업의 <니케: 승리의 여신> 부스에도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2021년 말에 출시되어 당시 지스타에 출품되진 않았지만, 넥슨게임즈의 <블루 아카이브> 도 한국과 일본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죠.
올해는 넥슨게임즈 뿐만 아니라 많은 메이저급 업체에서 서브컬쳐 게임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NC소프트는 자사의 '블레이드앤소울' IP를 활용한 수집형 RPG를 선보였고, 넷마블도 자사 '일곱개의 대죄'의 IP를 활용한 오픈월드 게임, <일곱개의 대죄: Origin>을 선보였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쿠로게임즈는 <명조:웨더링 웨이브>, 빅게임스튜디오는 <브레이커스:언락 더 월드> 를 선보이며 서브컬쳐 게임 대열에 합류했죠. 위 게임들은 '애니메이션 카툰 렌더링'을 활용한 게임으로, '젤다의 전설'이 공전의 히트를 친 이후로 수많은 게임사들이 같은 방식의 그래픽을 가진 게임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 때 대한민국 게임은 리니지를 위시한 MMORPG, 소위 '리니지라이크'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24년은 '원신라이크'가 급격하게 성장하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성공한 게임을 따라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소울라이크' 로 개발된 <P의 거짓>이 글로벌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일정 수준의 오리지날리티를 더하고, 개선된 게임 시스템을 탑재해서 '형보다 나은 아우'를 만들어내는 것이겠죠.
중요해지는 게임의 세계관 - 돌고 돌아, 드디어 한국으로
그동안 유달리 한국 게임사들은 게임 속 한국에 대한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인색했습니다. 갑옷 입은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게임을 만들어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는 만들지 않았고, 아포칼립스가 된 뉴욕은 배경이 될 지언정 서울은 배경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죽하면 콜오브듀티, 오버워치, 배틀필드2042 같은 외국 게임에 '한국 맵이 등장한다'는 소식만 들리면 온갖 게이머들이 관심을 가졌을까요. 그런데, 시대가 변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세계적으로 한국산 콘텐츠가 강력한 소프트 파워를 가지게 된 것이죠. K팝, K드라마, 심지어는 한식까지 전 세계에서 열광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니, 게임사들도 게임 속에 '한국'을 그려내기 시작했죠.
크래프톤은 자사가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배틀그라운드에 198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태이고'를 선보였고, 넥슨은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를 통해 강남 맵을 공개했습니다. 펄어비스는 <검은사막>에 '아침의 나라'를 업데이트하며 조선을 모티브로 한 콘텐츠를 공개했으며, (베이퍼웨어가 되어버린 것 같은) <도깨비>에도 한국적인 도시와 문화, 정서를 녹여냈습니다.
이런 흐름은 2023년의 지스타에서도 여실히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지스타에는 유달리 한국을 배경으로 한 게임들이 많이 선보여졌거든요. 엔씨소프트의 <LLL>은 파괴된 코엑스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크래프톤의 인생 시뮬레이터 <인조이>의 무대, '도원시'의 실제 배경이 된 곳은 강남 코엑스 일대입니다. '조선 사이버펑크'라는 수식어를 가진 원더포션의 <산나비> 역시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죠. 특히 <LLL>과 <인조이>는 현실을 그대로 옮긴 것과 같은 그래픽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런 고퀄리티의 배경은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해졌습니다. 언리얼엔진5가 공개된 이후 다양한 개인과 게임개발사들이 한층 더 현실과 동기화된, 실제같은 그래픽의 게임을 만들어내고 있거든요. 게임과 현실의 경계는 점차 불명확해지고 있고, 진정한 의미의 '메타버스'를 채워나갈 수 있는 콘텐츠들이 게임 세상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메타버스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었지만, 그 속을 채울 '콘텐츠'가 부족한 형국이었습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이 발전해서 현실과의 장벽을 허물어버리자 메타버스 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들이 생겨나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지스타에서 선보여진,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대부분의 게임들이 강남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한국 하면 서울, 서울하면 강남이 자동으로 연상되는 것을 부정하진 않겠습니다만, <카트라이더>의 강남 맵도, <콜오브듀티>의 강남 맵도, 크래프톤의 인조이도, NC소프트의 LLL도 코엑스와 무역센터 인근을 무대로 하고 있어 비슷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코엑스 근처의 현대산업개발 건물의 아이덴티티인 벽면 조형물이 원이냐 사각형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한국에 보여줄 거리가 강남만 있는 것도 아니고, 게임성을 강조하기에 매력적인 장소들도 많습니다. 좁고 복잡한 골목에서 긴박감있는 전투를 구현할 수 있는 성북구 일대도 있고, 육지와 바다를 같이 활용할 수 있는 부산도 있죠. 이제 막 게임 속 한국이 보편화되는 시기라 그렇겠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지역을 게임 속에서 만나 볼 수 있길 희망합니다.
변화하는 모습을 소비자에게 보여주고픈 업체들 - 이미지 쇄신을 위한 장
이번 지스타에서 돋보였던 점 중 하나는 '게임사들의 이미지 전환'이었습니다. 지나친 중세풍 MMORPG로의 치중, 2021년 메이플스토리 아이템 확률 조작 논란, 캐릭터뽑기 게임 (일명, 가챠 게임)에 집중하는 모습 등 그동안 한국 게임이 직면했던 비판을 어느정도 벗어나기 위한 게임사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되었습니다. 2022년에 넥슨이 '돈슨'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먼저 발빠르게 움직였고, 다른 게임사들도 곧바로 뒤를 따르는 형국입니다.
<LLL>은 리니지 리니지 리니지가 아닙니다: NC소프트
가장 눈에 띈 것은 역시 NC소프트입니다. 무려 8년만에 지스타에 참여한 NC소프트는 이번 지스타를 통해 '리니지'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내고 싶은 것 같았습니다. NC소프트 김택진 대표는 올해를 '글로벌 게임사로의 도약 원년'으로 정의했습니다아직도 회사 매출의 70% 가까이를 리니지가 떠받치고 있는 NC는 더이상 '리니지'로 먹고사는 회사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지스타 종료 이후 출시되는 NC소프트의 신작 <쓰론 앤 리버티 (TL)>에 대한 홍보가 크게 없었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구석의 전광판을 통해 사전예약 진행중임을 알리는 슬라이드가 올라와 있었고, 무대에서 개발자가 TL 플레이를 시연하긴 했지만, 소비자가 시연해볼 수 있는 공간은 없었거든요.
이번 지스타에 엔씨소프트가 들고 나온 게임은 총 7종으로, 그 중 시연 가능했던 3개의 게임은 'SF 오픈월드 MMO 슈팅' 장르의 <LLL>, AOS와 배틀로얄을 결합한 '난투형 액션 대전' <배틀크러쉬>, 블레이드앤 소울을 기반으로 하는 '수집형RPG' <프로젝트 BSS> 였습니다. 셋 모두 리니지식 MMORPG와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특히 <LLL>은 전쟁터로 변한 서울 코엑스 일대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다룹니다. 슈팅 게임에 MMO 특성을 더해. 여러 유저들이 동시에 전장에 접속하여 협동을 통해 제시되는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이죠. '30분'이라는 긴 체험시간을 준 만큼 참관객들은 게임의 다양한 면모를 구석구석 체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1시간 정도를 기다려 플레이해보았는데요, <톰 클랜시의 더 디비전> 시리즈를 생각나게 하는 박진감 넘치는 게임 플레이였습니다.
NC소프트가 들고 나온 게임들은 리니지식 BM을 적용하기 어려운 종류들입니다. 만약 NC소프트가 위 게임들에 리니지식 BM을 적용한다면, 그것 나름대로 혁신적인 경험이겠죠. 일부러 <리니지>와는 게임 플레이나 수익모델 정합성이 먼 게임으로 시연작을 구성한 것 처럼 느껴졌는데, 지스타를 방문하는 게이머들에게 달라진 NC소프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초석으로 풀이됩니다.
'뮤' 원툴은 잊어라: 웹젠
국내 중견기업 '웹젠'이 오랜만에 지스타에 참가한 점도 눈에 띕니다. 웹젠은 그동안 다른 게임사들과 유사하게 RPG 게임을 다수 만들어 온 개발사로, 게이머들에게는 '뮤 원툴'이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회사는 <뮤 온라인>의 성공 이후 뮤 템페스트, 뮤 레전드, 뮤 이그니션, 뮤 오리진, 뮤 아크엔젤 등 '뮤'라는 IP로 온갖 게임을 만들어 왔거든요.
그런 웹젠이 이번 지스타에 <뮤>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들고왔습니다. 2023 지스타에서 웹젠은 자회사 '웹젠노바'에서 개발하는 <테르비스>를 메인으로 선보였고, 일본의 웹소설을 기반으로 하는 <어둠의 실력자가 되고 싶어서! 마스터 오브 가든>과 <라그나돌>이라는 서브컬쳐 게임도 퍼블리셔 권한으로 선보였습니다. 특히 <테르비스>는 지스타 빌드에서 화려한 컷씬 연출로 호평을 받으며 단순에 서브컬쳐 게임 기대작으로 등극했습니다. 이번 지스타를 통해 '뮤'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영역의 게임을 퍼블리시할 수 있다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모양입니다.
블록체인도 '게임'의 구성 요소, 블록체인은 잠시만 미뤄둘게요: 위메이드
위메이드 역시 작년과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작년 지스타에서는 'LIFE IS GAME'이라는 키워드 아래 자사의 블록체인 생태계와 P2E (Play to Earn) 모델을 소비자들에게 알리는데 주력했다면, 올해 지스타에서는 다시 '게임'을 메인으로 선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자사의 신작 게임 <레전드 오브 이미르>와 <판타스틱4 베이스볼>을 중심으로 부스를 선보였죠.
물론, 위메이드는 아직 블록체인을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지스타 2023의 기조연설을 통해 블록체인 게임의 미래를 강조했고, B2B관에서는 여전히 블록체인을 메인으로 미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B2C관에서는 한 발 뒤로 물러난 모습입니다. 이번 지스타에서 시연된 위메이드의 게임에는 블록체인 관련 기능이 제거되어 있었습니다. 국내 규제 환경 상 블록체인 게임이 정상적으로 동작하기 힘들고, 일련의 비트코인 사태를 겪으며 대중들, 그리고 게이머들이 블록체인을 위시한 P2E 모델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팬들과 함께하는 지스타 - 스마일게이트의 미디어아트와 스토브인디의 인디쇼케이스
로스트아크의 '찐팬'들을 위한 헌사 - 스마일게이트 <로스트아크 모바일>
지스타를 '팬들을 위한 전시'로 바라보는 모습이 보이는 점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올해 지스타에서 이 분야에서 최고로 많은 관심을 받은 게임사는 바로 '스마일게이트'였습니다. 스마일게이트는 '로스트아크 모바일' 단 하나의 작품만을 들고 전시회를 찾았지만, 시연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부스를 팬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부스 옆 유휴공간을 '모코코 리프레시 카페' 컨셉으로 운영하여 게임을 플레이하는 실제 유저들의 발걸음을 이끌었으며, 부스 2층에서는 4면을 가득 채운 LED 스크린을 통해 게임 세계관 속 환경을 구현하여 플레이어들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덕분에 스마일게이트의 부스는 행사기간 내내 인산인해였죠.
스토브인디가 선보이는 인디게임들의 활약과 네트워킹
40여개의 인디게임이 선보여진 '스토브인디 G-STAR 인디게임 쇼케이스' 역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작고 영세한 업체, 팀 단위로 개발하는 인디게임의 특성 상 대규모 프로모션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인디게임 개발사들에게는 유저들과 만날 수 있는 이런 행사가 더없이 소중합니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이미 출시되어 어느정도 팬들이 형성되어 있는 게임들이 저변을 넓히기 위해 행사를 찾은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게임 구매 인증을 하면 머천다이즈 (굿즈)를 준다던가 하는 프로모션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동안 인디게임 하면 검증되지 않은 콘텐츠를 뜻했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게임성, 동아리 수준의 개발역량, 보장되지 않는 사후지원 등 어지간한 멘탈과 어지간한 애정이 아니라면 인디게임을 응원하기란 참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고, 다양한 경로로 게임 외연적인 확장이 가능한 시대가 오면서 인디게임에 날개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원더포션의 <산나비>입니다. 이번 지스타 인디쇼케이스에도 출품된 작품이죠. 2019년부터 대학생 5명이 팀을 이루어 개발한 게임인데, 지난 2021년 텀블벅에서 펀딩을 진행하여 목표액의 1440%가 넘는 7000여만원의 펀딩을 받아 관심을 끌고, 네오위즈의 눈에 들어 네오위즈가 게임의 퍼블리싱을 담당해 주었습니다. 5년여의 개발 기간을 거쳐 2023년 11월 9일 정식 발매되었고, 스팀에서 '압도적으로 긍정적 (97%)'인 평가를 받으며 흥행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흥행의 비결은 물론 훌륭한 게임성과 스토리, 액션 등 여러가지 요소가 있겠습니다만,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플루언서들이 유튜브나 트위치 등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산나비를 플레이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게임 스토리를 더빙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끝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오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끈 것입니다. 스팀과 같은 유통 플랫폼의 발전, NHN/네오위즈 등 대기업/중견기업들의 투자, 그리고 유튜브나 틱톡 등 영상 매체를 통한 '입소문' 마케팅을 통해 인디게임들이 소비자를 만나기 더욱 수월한 환경이 구축된 것이죠.
대형 게임사의 게임은 프로페셔널 아이돌에 가깝습니다. 대형 기획사의 자본과 실력으로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 시장에 출시되죠. 그러나 인디게임은 '프로듀스101'처럼 성장형 아이돌에 가깝습니다. 인디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은 단순히 완성도 높은 게임을 즐기는 것이 아닌, 좋아하는 게임사와 소통하고, 같이 게임을 완성해나가는 경험을 즐기는 것입니다. 물론 닭과 달걀 중 무엇이 먼저냐는 문제이긴 합니다만, 인디게임의 가장 큰 한계는 즐길 수 있는 사람의 절대적인 풀이 작다는 점입니다. '판매 저변의 한계'만 극복해낼 수 있다면 인디게임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을겁니다. 이런 인디게임사들을 위해 지스타 이외에도 다양한 인디게임 행사들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부산정보산업진흥원이 개최하는 <부산 인디커넥트 페스티벌 BIC>도 있고, 스마일게이트의 스토브인디가 개최하는 <버닝비버>라는 행사도 있습니다. 경기도청이 주최하고 문체부가 후원하는 <플레이엑스포>에도 인디게임이 가득하죠. 이런 행사들은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넘어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관심을 가지게 해주는 촉매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모니터를 벗어나 현실 제품과 미디어로 확장되는 게임 속 세상
최근들어 게임은 점점 모니터 밖으로 나오고 있고, 지스타 역시 그러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탑승했습니다. 단순히 부스를 방문하면 기념품을 나누어주는 것에서 나아가, 부스에서 공식 머천다이즈 (굿즈)를 판매하거나, 게임을 즐기며 소셜미디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유명 작가들의 머천다이즈 (굿즈)를 구매할 수 있는 자리가 공식적으로 마련되었거든요.
특히 이런 분야 외연 확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수집형 RPG 게임의 경우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외연 확장에 유리합니다. 캐릭터 단일 상품으로도 확장이 가능하지만, 서로 다른 캐릭터의 조합이 이루어질 경우 고유한 케미가 완성되며 개성있는 콘텐츠가 되거든요. 게임사들은 공식 뮤직비디오를 제작한다던가, 캐릭터송을 제작하고,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게임 외적인 IP 활용에 공을 들이는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 <리그오브 레전드>와 <오버워치>도 각자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선보였고, <블루 아카이브> 역시 TV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지스타에 출품한 넷마블의 <데미스 리본> 역시도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연예인과 부스걸을 넘어 '인플루언서'의 시대로
앞서 이야기한 것 처럼, 게임 시장에서 게임 실황을 전하는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덕분에 이번 지스타에서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큰 돈을 들여 연예인을 불러 마케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최근에는 일회성으로 게임을 홍보해주고 끝인 연예인 대신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인플루언서 (인터넷 방송인)들이 그 자리를 꿰차기 시작한 것이죠. 흔하게 볼 수 있던 부스걸들도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는 지스타와 게임사의 단체 티를 입은 진행요원들이 채웠고, 그 포지션은 전문 코스프레 모델들이 이어받았습니다. 다만 기존과 달리 무대 위에서, 통제된 환경에서 게임 캐릭터들의 분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겠네요.
NC소프트는 '쵸단', '백설양', '우정잉' 등의 인터넷 방송인을 초청하여 자사의 신작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벤트를 무대에서 개최했고, 부스 한 켠에 인터넷 방송을 위한 부스를 만들어 현장에서 유명 인플루언서가 게임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넷마블이 '이세계아이돌'이라는 버추얼 그룹 소속 인플루언서를 초청하여 화면을 통해 현장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색적인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올해 참가업체는 역대급이라는데...
올해 지스타의 흥행 성적은 대단합니다. 총 3328부스 (B2C 2432부스, B2B 896부스) 규모로 차려진 행사장에는 총 42개국 1038업체가 각자의 게임과 기술을 뽐냈고, 4일간 19만 7000여명이 행사장을 방문하며 2022년의 18.4만명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사를 찾았습니다. 상반기에 일산 KINTEX에서 개최되는 플레이엑스포가 약 10만명, 하반기에 부산에서 개최되는 지스타가 약 20만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게임 행사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다만, 올해에도 행사의 중심을 잡아줄 대형 업체들이 다수 참가하지 않아 아쉬운 점으로 남았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지스타에는 '3N'이라고 불리는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가 모두 모이면 안되는 결계라도 있는 것 같습니다. 2022년에는 넥슨과 넷마블이 참여하였는데, 2023년 지스타에는 넥슨이 빠지고 엔씨소프트가 들어와 또 다시 2N체제를 구축했습니다. 넥슨이 빠진 것에는 여러가지 내부적인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유력한 이유는 바로 마케팅 효과를 얻어야 하는 넥슨의 신작 게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스타는 개발사들이 앞으로 공개될 신작 게임의 관심을 유치하는 행사이기도 합니다. 대중에게 선보일 '신작'이 없다면 돈을 들여 참관하는 이유가 없는 셈이죠. 작년, 2관에 성대한 부스를 차려 관람객을 견인했던 <원신>의 개발사, 호요버스 (前 미호요)도 이번 지스타에 불참했습니다. 아무래도 지스타와 인접하여 2023년 12월에 일산 KINTEX에서 개최된 AGF 2023 (Animation & Game Festival)에 메인 스폰서로 참여하는 것을 확정지은 상태이기 때문에 굳이 자원을 분산시키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글로벌' 게임쇼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글로벌' 게임사가 부재한 환경도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당장 LA에서 개최되는 연말 게임쇼인 TGA에서 공개되는 신작 라인업들과 지스타에서 공개되는 신작 라인업을 비교해보면, 지스타의 라인업은 한없이 초라하기만 합니다. 대형 게임사들이 지스타에 참여할 만한 메리트를 만들어내거나, 대형 게임사 대신 다양한 인디 게임사를 확보해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등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행사 공간 배치도 다소 아쉬워
최근 몇 년 동안 대한민국이 겪은 여러가지 사회 문제로 인해 '인파관리'가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고, 올해 지스타 행사 역시도 '인파관리'를 중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전시관 내부에 사람이 많았을지언정, 행사장 내부에서 이동하는데 별다른 문제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조직위원회가 각 부스를 전시장에 배치한 기준은 다소 의문을 남겼습니다.
여러 업체들이 참가하는 행사에는 큰 업체도, 작은 업체도 있습니다. 조직위원회는 큰 업체와 작은 업체의 위치를 조정하여 밸런스있는 전시관 운영을 해내야 하는 책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스타 2023 조직위원회는 지나칠 정도로 메이저 업체들을 1관에 몰아 넣었고, 이러한 부스 배치는 전반적인 게임쇼의 균형을 해치기 충분했죠. 덕분에 1관은 행사 내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메이저 업체가 적거나 거의 없는 수준이었던 2관은 행사 내내 상대적으로 한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부대행사에 대한 홍보나 안내도 아쉬웠습니다. 벡스코의 면적이 넓지 않다보니 1관과 2관이 나눠지고, 각 관 안에서도 층별로 콘텐츠가 분리된 경험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수직으로 분리된 행사장은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인지상정. 그를 백업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메인 전시장 이외의 장소에 어떤 콘텐츠가 있고, 어디서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안내가 거의 없다보니 관람객 입장에서 너무 불편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스타 서브컬쳐 페스티벌'은 행사장과 한참 떨어진 3층 그랜드볼룸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전시장에서 에스컬레이터를 두 번이나 타고 올라가고, 구름다리를 이용해서 꽤 먼 거리를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1관에 사람이 집중되어 전시관이 터져나가는 와중에 큰 무대와 유명 작가들을 모셔 온 이 행사장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3층에서 이런 행사가 같이 열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지스타는 2028년까지 부산 BEXCO에서 개최됩니다. 계약이 그렇게 되어 있다더군요. 지스타급 전시를 개최할 수 있는 면적을 가진 또 다른 전시장, 일산 KINTEX는 2024년부터 제 3전시장을 건축하여 2027년에 완공할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2028년 이후에 KIXTEX에서 행사를 개최한다면 더 넓은 수평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겠지만 (물론, 플레이엑스포가 있기 때문에 지스타가 서울로 올라올 가능성이 굉장히 희박하다고는 하더군요.) 앞으로도 지스타가 벡스코에서 개최될 것이라면 분명 개선이 필요한 포인트일 것입니다.
총평: K-게임은 다시 게임의 본질로, 지스타는 새로운 게임쇼의 길로
개인적으로, MMORPG로 대표되는 모바일 게임을 선호하지 않는 입장에서 국내 게임시장은 늘 아쉬웠습니다. 늘 게이머들의 니즈와는 반대로 움직이는, 돈이 되는 시장만을 바라보고 움직이는 게임사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죠. 그러나 2022년 지스타와 2023년 지스타를 참관하며 기존과 달라진 생각이 있다면, 결국 시장의 방향성을 움직이는 열쇠는 게이머들이 쥐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욕을 먹을 지언정 리니지라이크 MMORPG는 돈이 되었고, 게임사들은 '사업체'였기 때문에 돈이 되는 게임을 만들어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 힘의 균형이 이동하며 돈이 되는 '다른 시장'이 생겨났기 때문에 게임사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됐다고 해석할 수 있겠지요.
모든 유행은 돌고 도는 법입니다. 모바일과 MMORPG 유행이 있으면 또 다른 유행도 돌아옵니다. 오랜 모바일 강점기 끝에 대한민국 게임은 '장르적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되찾았고, 장르적 다양성이 돌아온 대한민국 게임계는 비로소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몇 년은 대한민국 게임 제 2의 전성기라고 부를 법 합니다. 지스타에서 이런 게임들이 장르적 '아웃라이어'가 아니라 하나의 '메가 트렌드'로 자리잡은 점도 긍정적인 포인트입니다.
게임쇼의 흥망성쇠도 마찬가지입니다. 온라인 게임의 부흥으로 굉장한 인기를 구사했던 게임쇼는 이제 한 물 갔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으레 일어나던 게임사들의 개발-신작 공개 스케줄이 변하면서 신작 공개의 장으로써의 역할은 옅어졌고, 게임 쇼가 아니더라도 게임을 접할 수 있는 경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게임 쇼의 위상은 예전같지 않습니다. 기존과 같은 '게임쇼'의 관점에서의 지스타는 분명히 후퇴했습니다. 다른 글로벌 전시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는 한 때 기업들이 신제품을 가장 먼저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키노트 스피치를 통해 신제품을 발표하거나, 아니면 CES에 인접하여 CES와 연계한 제품발표회를 하곤 했죠. 그러나 요즘 글로벌 전자제품 기업들은 CES에서 신제품을 발표하는 대신 대부분 자체적인 쇼케이스를 엽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례 행사로 개최되어 오던 세계 최대 게임쇼, E3 2023는 참가 기업이 부족하여 행사가 개최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죠.
그래서, 게임 쇼는 기존과 같으면 안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하죠. 다행스럽게도 지스타는 변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조직위원회는 단순히 신작을 공개하는 마케팅 관점의 자리가 아니라, 게이머들과 소통하고 팬덤을 공고히 하는 자리로 지스타를 변모시키고 싶은 것 같습니다. 단순히 '일일 입장객 수'에 연연하여 행사 경험을 망치는 기획보다는, 단 한사람의 관람객이라도 더 만족시키고 돌아갈 수 있는 행사를 구성하고 싶은 것 처럼 보여집니다. 예를 들어, 코스튬플레이 이벤트, 유명 작가들의 머천다이즈 판매, '게임 경험'을 체험할 수 있는 미디어파사드와 오프라인 팝업을 통해 하나의 '게임 세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작업은 어렵고 고된 작업입니다. 게임을 만들 때도 '치밀한 세계관'을 구성하는 작업이 정말 어렵다고 하죠. 하지만 그렇게 구축된 견고한 세계관은 향후 몇 십년간 게임사를 먹여살릴 하나의 큰 IP이고 자산이 됩니다. 지스타 역시 매 년 나아지는 행사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되길 바래봅니다.
'EVENT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CES2024 참관기] ② 'Mobility' 트렌드 TOP 4 (2) | 2024.01.23 |
---|---|
[CES2024 참관기] ① 'Everywhere' 트렌드 TOP 4 (2) | 2024.01.22 |
[2023 월드 IT 쇼 참관기] 이노베이션의 2023 월드 IT 쇼 둘러보기 (0) | 2023.06.02 |
[2022 지스타 참관기] 이노베이션의 2022 지스타 (G*STAR) 참관기 (0) | 2023.04.24 |
[2023 서울모빌리티쇼 참관기] ③ 저물어가는 전시회의 시대를 돌아보며 (0) | 2023.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