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휩쓴 전염병이 종식되며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잠시, 후유증은 생각보다 강력했습니다. 많은 나라들은 인플레이션으로 허덕였고, 치솟은 금리는 내려올 줄 모르고, 경제 성장률은 둔화되었으며, 나라 간의 갈등이 이어졌고, 무력 충돌까지 있었죠. 이러한 수많은 변수들 속에서 특히 어려움을 겪은 산업계가 있었으니, '모빌리티' 산업계였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CES는 사실상 '이름 다른 모터쇼'라는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GM, 벤츠 BMW, 현대기아자동차와 같은 유수의 완성차 업체들이 CES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CES는 자동차 업체들의 기술 경연장이 되었죠. 그러나 올해는 CES에 참여한 완성차 업체가 작년보다 크게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GM, 스텔란티스, 포드가 불참했죠. CES 직전에 발생한 전미자동차노조 (UAW, the United Automobile Workers) 파업이 결정타가 되었습니다. 각 회사들은 'UAW의 파업으로 회사가 감당해야 하는 손해가 큰 상황에서 전시를 구성할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빌리티 혁신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완성차가 빠진 자리를 아마존이나 퀄컴과 같은 글로벌 플랫폼사가 채워주었고, 자동차에 융합되는 ICT 부품들은 본격적인 자율주행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음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또 하나, 좋지 않은 경제상황 속에서도 '친환경'은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가열차게 추진했던 '전동화'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가로막혀 지연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친환경차 정부 보조금'을 배경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던 전기차의 성장세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배터리 수급 문제, 전장 부품 수급 문제에 가로막혀 신차 생산이 둔화되었고, 높아진 전기차의 가격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하이브리드로 눈을 돌렸으며, 얼마 만들지도 못하는 전기차의 재고는 날이 다르게 쌓여가고 있습니다. 이런 불확실성의 상황 속에서 각 기업들의 위기 타파를 위한 해법도, 솔루션 공급사의 해법도 다양합니다.
저희 이노베이션은 CES 2024에서 나타난 모빌리티 부문의 주요 키워드로 'SDV, PM, EV, HYDROGEN' 4개를 꼽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모빌리티 부문의 4개 키워드를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1] <CES 2024> ① 'Everywhere' 트렌드 TOP 4
[2] <CES 2024> ② 'Mobility' 트렌드 TOP 4
[3] <CES 2024> ③ '로보틱스, 메타버스, 헬스케어, 산업' 트렌드 TOP 4
[4] <CES 2024> ④ 삼성전자, LG전자 부스 둘러보기
[5] <CES 2024> ⑤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부스 둘러보기
[6] <CES 2024> ⑥ CES 2024를 마무리하며
01. SDV를 위시한 차량용 시스템의 진화
CES 2024 모빌리티 분야의 최대 관심사는 'SDV'라는 단어였습니다. Software Defined Vehicle의 약자인 SDV는 그동안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하드웨어를 뒷받침하기 위해 소프트웨어가 포함되던 레거시 자동차들과 달리 소프트웨어로 정의되어 하드웨어가 관리되는 자동차를 뜻합니다. SDV는 그동안 '레거시'에 의존해 오던 자동차 산업 자체가 뒤바뀌는 꽤나 큰 패러다임 시프트입니다. CES 2024에 참여한 완성차 제조업체들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클러스터 시스템 혁신을 통해 사용자에게 달라진 가치를 제공하려 노력했고, 자동차 플랫폼을 공급하는 플랫폼 사들은 제조사들의 니즈에 맞춘 전장 플랫폼을 선보이며 미래 자동차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보려 노력했습니다. 완성차 업체부터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폭스바겐 -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ChatGPT 통합
폭스바겐은 CES 2024 Press Conference를 통해 2024년 2분기부터 자사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ChatGPT를 통합한다고 밝혔습니다. 폭스바겐 브랜드로 출시되는 파사트, 골프, 티구안 등을 비롯하여 전기차 라인업인 ID. 시리즈가 그 대상으로, 기존에 제공되던 폭스바겐의 음성 비서 IDA와 통합하여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설명에 따르면, 기존에 차량 내부의 각종 장비를 제어하는 것은 IDA가 담당하고, 차량 외적인 지식 영역의 커뮤니케이션을 ChatGPT가 담당하게 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폭스바겐은 음성으로 차량 외부 세상과 커뮤니케이션하게 되면 운전자가 운전 중 스마트폰을 보는 횟수를 줄일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겠죠. 기대대로 ChatGPT가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BMW - XREAL 및 META 협업 AR 글라스 공개
BMW는 XReal Air 2 글라스를 통해 차량 내부에서 AR 내비게이션과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공개했습니다. AR 글래스를 끼고 운전할 때 AR 지도 서비스나 내비게이션 안내를 해주는 콘셉트인데요, 제한 속도 안내 혹은 공사 구간 안내를 시인성 좋은 위치에 띄워주기 때문에 시선 분산 없이도 필요한 정보를 보다 실감 나는 HUD 개념으로 받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10년 전에 아이나비에서 증강현실 기반 내비게이션 X1을 발표했었는데요, 이 때는 AR 기술이나 HUD 기술이 무르익지 않았던 시점이기 때문에 기존 내비게이션에 카메라 영상을 띄우고, 그 위에 AR 영상을 띄워준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BMW와 XREAL의 이번 콘셉트는 AR 기술을 보다 실용적인 영역으로 가져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일각에서는 'AR에 광고까지 띄워주는 위험한 플랫폼'이라면서 해당 기술을 CES 6-Worst Technolgy로 꼽기도 했습니다.
벤츠 - MBUX Virtual Assistant 및 차세대 MBOS 비전 공개
벤츠 역시 자사 인포테인먼트 고도화를 위해 다양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벤츠는 CES 2024에서 새로운 CLA 콘셉트와 함께 MBUX의 다음 버전, MBOS를 공개하였고, 차량 내 가상 비서인 'MBUX Virtual Assistant'를 발표하였습니다. 기존 벤츠 차량에 탑재된 음성 비서는 'Hey Mercedes'라는 호출어에 반응하는 식으로 설계되었지만, 새로운 'Mercedes Virtual Assistant'는 LLM (대형 언어 모델)을 활용하여 호출어 없이 사용자와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시스템이 어떤 인공지능 모델을 베이스로 구동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023년 6월, 벤츠는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자사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MBUX (Mercedes-Benz User eXperience)에 ChatGPT를 탑재한다고 밝혔고, 실제로 MBUX 탑재 차량들에 한해 ChatGPT 지원 베타테스트도 진행하였죠. 그러나 CES에서 공개된 'MBUX Virtual Assistant'가 ChatGPT 기반으로 개발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벤츠는 어떤 기술로 음성 비서가 구동되고 있냐는 미디어의 질문에 "다양한 제조사들과 협력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코멘트로, 구체적인 협력사를 공개하길 거부했습니다.
새로운 MBOS는 LLM 기반의 음성비서 추가뿐만이 아니라 클러스터에 주변 환경을 3D View로 표시해 주는 시각적 피드백 기능을 포함하는 등 자율주행 시대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고, 중앙 및 조수석 전면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서는 소니의 스파이더맨이나 그란투리스모 등 인기 게임을 스트리밍으로 실행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합니다. 이외 영화, 노래 등 멀티미디어를 재생할 수 있는 기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차량 내 Dolby Atmos 스피커를 탑재하고, Dolby Atmos를 지원하는 스트리밍 제공자들과 협력하고 있죠.
01-a. 자동차 시스템 전쟁 2라운드: 플랫폼 전쟁
완성차 업체뿐만이 아니라 차량에 탑재되는 베이스 플랫폼을 제조/공급하는 업체의 경쟁 또한 치열합니다. 차량 내 화면을 통해 기초적인 차량 제어만 지원하던 과거와는 다르게, 점점 차량은 우리가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에서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의 작업을 수행하도록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인텔의 CEO, 펫 겔 싱어는 "자동차는 본질적으로 바퀴와 엔진이 달린 노트북이며, 이 비싸고 무거운 제품에 대한 새로운 기술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라고 했습니다. 우선 인텔부터 보실까요.
인텔 - intel automotive
인텔은 CES 2024에서 차량용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지난 30년의 휴대전화 시장을 돌아보니 제반 여건이 준비되었을 때 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사례를 보았고, 자동차 산업 역시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예측한 것입니다. 테슬라가 Nvidia SoC를 탑재한 주행보조 기능 (Tesla Autopilot)이 탑재된 자동차를 만들어서 가능성을 증명했고, Apple CarPlay와 Google Android Auto가 자동차의 텔레매틱스 기능이 결합되었을 때의 가능성을 증명했죠. 2023년에는 7개의 완성차업체가 전기차 충전 Union을 만들기로 결정했고, 테슬라는 자사의 슈퍼차저 네트워크를 타사에 개방, 더 많은 회사들이 인프라의 이득을 누릴 수 있도록 결정, 더 많은 전기자동차 기반의 완성차 업체 Player가 늘어났습니다. 바로 이 시점이 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초입이며, 인텔이 시장에 진입해서 활약할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대다수의 레거시 자동차들은 오래된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차량용 반도체를 짜깁기 하여 수십여 개의 마이크로컨트롤러를 연결해 둔 시스템 위에서 굴러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센서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통합하여 주변 맥락을 인식/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각 센서에서 받아들여 처리한 정보를 CAN 통신을 통해 제한적으로 시스템끼리 주고받는 정도였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주변 상황을 받아들여 CAN 통신을 통해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량에는 한계가 왔고, OTA를 통해 시스템을 업데이트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변화를 주거나 기능을 추가하기 다소 어려웠습니다. 고도화된 기능을 제공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서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량이 늘어나며 기존 차량에 탑재되던 SoC의 성능으로는 매끈한 사용자경험을 제공하지 못하게 된 현재의 상황도 차량 제조사들의 신규 칩에 대한 니즈를 가속화했습니다.
인텔의 차량용 반도체는 테슬라의 HW Chip처럼 'Software-Defined' 되어 상호 간에 연결된 시스템을 지향합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클러스터, ADAS, 차량 커넥티비티, 높은 등급의 레벨 4 자율주행 기술을 처리하는데 필요한 반도체를 통합하여 운용하는 것이죠. 자동차와 같이 안전이 중요한 산업에서는 여러 가지 기능을 하나의 칩에서 처리하는 시스템이 금기되어 왔습니다. 모든 시스템에는 장치가 동작을 멈췄을 때 즉시 백업, 동작하는 'Failsafe' 구조가 이중으로 설계되어 복잡도를 더했죠. 인텔은 이런 제약을 '가상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차량 안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다중 Workload를 지원할 수 있도록 (e.g. 클러스터에는 주행 정보를 띄우고, 인포테인먼트 화면에는 내비게이션을 띄우고, 뒷좌석 화면에서는 Android 기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등) 설계한 것이죠. 이를 위해 인텔의 시스템은 4개의 8K 디스플레이 연결을 감당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해당 시스템의 런치 커스터머는 중국 지리자동차로, 지리자동차의 전기차 브랜드 지커 (ZEEKR) 차량에 인텔의 시스템이 탑재될 계획이라고 합니다.
퀄컴 - Snapdragon Digital Chassis
퀄컴은 CES 2024에 비공개 부스를 꾸려 일반 관람객들에게까지 부스를 개방하진 않았지만, Snapdragon Automotive 콘셉트카를 공개하며 미래의 Snapdragon Digital Chassis가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전시했습니다. 퀄컴 스냅드래곤 디지털 섀시 역시 인텔과 유사한 방향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CES 2024 직전 발표된 'Snapdragon Ride Flex' SoC는 간결한 시스템 구성으로 더 많은 일을 수행할 수 있길 원하는 완성차 및 유관 업계의 니즈를 반영한 제품입니다. 하나의 SoC 플랫폼에서 디지털 콕핏 (클러스터), ADAS, 커넥티비티 기능, 인텔과 동일한 레벨 4의 자율주행 시스템까지 모두 처리할 수 있죠. 보헙 업계가 자동차의 주행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면, Snapdragon Digital Chassis는 바로 데이터를 처리하여 전달할 수 있고, 미디어 업계가 콘텐츠를 탑재하고 싶다면 Snapdragon Digital Chassis 시스템을 통해 탑재하면 되는 것이죠.
퀄컴 Snapdragon Ride 플랫폼의 강점은 바로 온 디바이스 생성형 AI 지원입니다. 예를 들어, 차량에 복잡한 수 백 쪽의 매뉴얼을 탑재하는 대신 차량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매뉴얼 내용을 통합, 사용자가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궁금증과 문제 해결법을 안내해 줄 수 있는 것이죠. 차량 안에서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대신 음성 명령만으로 차에서 내린 후 할 일을 정리, 휴대전화나 다른 장치로 전송하여 끊임없는 작업을 이어나갈 수도 있습니다. 현재 Snapdragon Digital Chassis는 BMW 등 메이저 차량 제조사를 고객으로 두고 있으며, BMW i7과 같은 차량에는 이미 탑재되어 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구글 - Android Automotive OS (자동차용 Android) 및 Android Auto의 전기차 지원 강화
구글은 Android Automotive OS로 조금씩 시장 지배를 늘려 나가고 있습니다. 본래는 블랙베리의 QNX OS를 기반으로 차량용 OS를 적용하던 업체들이 야금야금 Android Automotive OS (이하 AAOS)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미 볼보/폴스타, GM과 같은 메이저 업체들이 AAOS 적용을 발표했거나 혹은 AAOS가 탑재된 차량을 공개하고 있고, ccOS라는 자체 OS (Proprietary OS)를 가진 현대자동차 또한 AAOS 적용을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구글은 CES 2024에서 AAOS가 적용되어 있는 폴스타 차량의 개발 데모를 선보였습니다. 구글이 소개한 AAOS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Google Maps의 AAOS 지원 강화입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AAOS 탑재 차량의 인포테인먼트에서 구글 지도를 열고 목적지를 입력하면, 해당 목적지까지 주행했을 때 차량의 배터리가 얼마나 남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음성으로 차량의 공조와 같은 세부 설정도 제어할 수 있는 기능에 더해, Google Home과의 연동을 통해 차 안에서 스마트홈을 제어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는 집으로 향하며 자동차에 '전등을 켜줘' 혹은 '집에 있는 에어컨 틀어줘'와 같은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AAOS 뿐만이 아니라 Android 스마트폰과 연결하여 사용하는 Android Auto에도 반영되어 Android를 기반으로 하는 차량 솔루션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이라면 동일한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SDV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다가온 "현재"
이외에도 정말 다양한 플랫폼 업체들이 자사의 신규 플랫폼을 뽐냈습니다. 현재 다양한 제조사들의 레벨 1~2 자율주행 시스템을 담당하고 있는 모빌아이는 자율주행 구현을 더욱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플랫폼, DXP OS를 발표하였고, 독일의 일렉트로비트는 보안 중심으로 설계된 차량용 OS를 선보였습니다. 미국의 거대 통신사 AT&T는 자동차 제조업체 Lucid Motors (루시드모터스)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커넥티비티를 담당하는 등 SDV 시대가 되며 각자 강점을 지닌 분야에서의 다양한 협업과 연구개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차량의 스마트화로 인해 차량에 대한 보안 위협이 증가하는 바, 유럽 경제위원회가 UNECE WP.29로 지칭되는 차량 보안 법률을 채택하여 24년 7월부터 판매되는 모든 차량에 대한 보안 승인이 이루어지도록 규제를 신설하였는데요, 관련 동향에 따라 국내에서는 아우토크립트가 CES 2024에 참여하여 SDV 시대에 필요한 보안 솔루션 (In-Vehicle System Secutiry, Communication Security, Plug and Charge Certification System 등)을 선보였습니다. 마치 스마트폰이 고도화되며 프로세서와 저장공간에 별도의 보안 영역이 만들어지고, 하드웨어를 보호하는 보안 레이어 삼성 Knox가 등장했던 것 같은 흐름이 모빌리티 분야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합해 보면, 더 이상 차량 제조사들은 신기술을 도입하는데 보수적이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을 필두로 한 정보기술이 발전하며 운전자를 방해하는 요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아졌고, 제조사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형태의 운전을 위해 기능을 제한하는 것이 아닌, 운전자들과 탑승객들이 차량 안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열어주되, 더욱 복잡한 제어 알고리즘을 통해 운전 중에는 운전자가 운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통해 오디오/비디오 서비스가 제공되지만, 주행 중에는 시스템에서 비활성화되는 간단한 해결책, ChatGPT 등 가상 음성 비서를 통해 화면을 보지 않고도 운전자가 궁금해하는 다양한 정보들을 음성으로 알려주고, 실내 카메라와 다양한 센서를 이용하여 운전자를 모니터링하여 운전자가 운전에 집중하지 않을 경우 주행보조장치를 비활성화시키는 강경한 해결책까지 등장하며 기술을 도입하며 나타난 문제를 또 다른 기술을 통해 해결하는 흥미로운 연결 고리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02. 개인형 이동장치 (PM, Personal Mobility) 산업의 대중화
시장의 규제로 인해 사업자를 기반으로 하는 '공유모빌리티' 사업은 전 세계에서 주춤하고 있습니다. 공유 모빌리티 사업의 원조 격이었던 '버드'는 2023년 7월 국내에서 철수했고, 같은 해 12월에 플로리다 파산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제출했습니다. 또 다른 PM 시장의 선구자인 '라임' 역시 2022년 6월 한국에서 철수했고, 유럽 지역에서 '공유 킥보드 금지'가 명문화되며 일부 지역과 도시에서 철수했습니다. 독일의 윈드모빌리티 'WIND' 역시 2021년 국내 사업을 정리했고, 중국의 공유 자전거 ofo 역시 2020년에 파산하고 말았죠.
그러나 CES 2024에서는 다양한 전시관에서 다양한 개인형 이동장치 (이하 PM)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사업적 관점에서 공유모빌리티는 죽어가고 있지만, 개인이 PM을 구입하여 타고 다니는 경우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동킥보드, 전기 자전거, 전기 오토바이, 전기 ATV 등 다양한 개인형 이동장치가 전시되며 소형 모빌리티 기술 혁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같은 개인형 모빌리티 장치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배터리 기술의 발전이 있었습니다. 과거 개인형 이동장치는 가볍고 작아야 한다는 폼팩터 한계로 인해 성장하지 못했던 분야입니다. 무게와 크기를 신경 써서 개발하다 보면 적은 양의 배터리를 탑재할 수밖에 없었고, 주행거리가 감소하여 필연적인 상품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죠. 그러나 최근 같은 공간에 많은 배터리를 욱여넣을 수 있는 고밀도 배터리가 등장하고, 배터리 관리 시스템 (BMS)의 발전으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며 PM 장치들의 주행거리가 크게 늘었습니다. 일례로 세그웨이-나인봇의 첫 전동킥보드인 ES1 모델 (11kg 수준)은 최대 주행 가능 거리가 25km 수준이었지만, 최근 출시된 E45 모델 (16kg 수준)은 최대 주행거리 45km 수준, G2 MAX 모델 (24kg 수준)은 최대 주행거리가 70km 수준입니다.
Personal Mobility → Purpose-built Personal Mobility
Honda Motocompacto (2023)
혼다가 작년 11월부터 판매하고 있는 'Motocompacto'는 여러 가지 PM의 특성 중 '휴대성'에 초점을 맞춘 제품입니다. 무게는 18kg 수준으로 경량 전동킥보드와 다르지 않고, 손잡이와 바퀴를 접어 넣을 수 있어 대중교통에 가지고 탑승하기도 수월하죠. 가격은 130만 원 수준으로, 최대 속도는 24km/h, 주행 가능 거리는 19km, 완전 충전까지는 3.5시간이 걸립니다.
이 제품의 이름을 듣자마자 1980년대 혼다에서 출시된 'MOTOCOMPO'라는 바이크가 떠올랐습니다. 혼다 모토콤포는 경형 차량 트렁크에 적재할 수 있는 사이즈의 미니 바이크로 개발되어 '혼다 시티'라는 차량과 함께 출시되었던 모빌리티 제품입니다. 당시의 내연기관 기술력으로는 아무리 작고 가볍게 만든다고 해도 40kg를 훌쩍 넘을 수밖에 없었고, 기름 냄새라거나 주행거리라거나 하는 부차적인 이슈들도 많았기에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배터리를 사용하는 친환경 PM 시대가 되며, 과거에 실패했던 콘셉트를 훨씬 합리적인 기술 및 가격 수준에서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비슷한 아이디어로, 현대자동차가 CES 2017에서 공개했던 '아이오닉 스쿠터'가 있었습니다. 3단 접이식 구성으로 혼다 모토콤팩토처럼 아이오닉 5 차량에 수납하여 탑승할 수 있는 라스트마일 모빌리티였습니다만, 양산까지 도달한 혼다 모토콤팩토와는 다르게 현대차는 강화된 국내 전동킥보드 규제를 이유로 지난 2021년 말 해당 킥보드의 양산을 포기했습니다.
물론, 현대차가 퍼스널 모빌리티 사업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닌지, CES 전시물 중 하나에서는 해당 킥보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과연 현대가 그리고 있는 킥보드형 개인형 이동장치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는 포인트입니다.
Hyundai DICE (DIgital Curated Experience)
현대차는 이번 CES에서 DICE라는 개인형 이동 캡슐을 공개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다양한 로봇 및 자율주행 장치에 사용하고 있는 PnD (Plug and Drive) 모듈을 활용하여 개발된 해당 이동장치는 단순히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자율주행하여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AI 기술과 생채정보 스캔 기술을 이용하여 개인에게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 이동하는 시간을 한 층 유용하게 만들어주는 모빌리티 수단입니다. 예를 들어, 캡슐이 탑승자를 인식한 후, 생체정보를 스캔하여 최적화된 조명 밝기를 제공한다거나, 건강 정보를 안내해 주는 식이죠. 즉, PM의 다양한 가치 중 '개인화'에 집중한 제품인 셈입니다.
이번 CES에는 Verge Motorcycles, Horwin과 같이 전기를 기반으로 하는 고성능 바이크를 제조하는 회사들도 참석했습니다. 과거 고성능 바이크는 내연기관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내연기관 고성능 바이크는 더 많은 배기량을 가지고, 높은 출력을 제어하기 위한 다양한 안전 기술이 집약된 제품이었죠. 그러나 배터리로 파워를 공급받는 시대가 된 이후 바이크 역시 또 다른 진화를 맞이했습니다. 엔진을 관리해 줄 필요도 없고, 모터를 기반으로 동작하기 때문에 과거 엔진 기반 바이크에서 발생하던 소음도 없고, 발열도 없습니다. 심지어 내연기관 특유의 반응 지연 (연료를 점화하여 실제로 파워가 전달되기까지의 지연시간)을 극복할 수 있죠. 그냥 모터를 돌리겠다는 신호만 보내면 모터를 최대속력으로 제어할 수 있는걸요. 이런 장점을 기반으로 하여 내연기관 기반 모터바이크의 '고성능화'를 이어갈 다음 세대의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 라스트마일 모빌리티로 사용되던 'Personal Moblilty'는 목적성을 가진 이동장치로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03. Ease of being 'electric'
전기차 시대가 되며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기술적 장벽이 낮아졌습니다. 물론 '완성도 높은 전기차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고, 많은 업체들이 고전하고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적어도 내연기관 시대에 복잡한 '엔진'을 사용하던 때와 비교하면 '모터'를 활용하면 차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꽤나 매력적입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기존 내연기관 (ICE, Internal Combustion Engine) 차량에는 3만여 개의 부품이 필요하지만 EV 차량에는 1.9만 개 수준으로 37% 적은 부품이 사용됩니다. 기존의 Global Supply Chain에 포함되지 않은 신규 회사가 '차량'을 이용하여 사업을 해본다고 가정했을 때, 0부터 시작해도 남들도 다 비슷한 상황인 '전기차' 분야는 특히 매력적이죠. 그 때문일까요, 중국의 샤오미도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발표했고, 리샹, 샤오펑, 리오토, 니오 등 전기차를 기반으로 창립된 스타트업 회사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소니-혼다 모빌리티 - 소니가 전기차를 만듭니다.
CES 2020, 정말 뜬금없는 소식이었지만 소니가 기술 실증을 위한 전기차를 만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CES2022에서 소니는 세단과 SUV 형태의 프로토타입 차량 두 대를 공개하며 '자동차 사업 진출'이 장난이 아님을 선언했습니다. 22년 6월, 소니는 전기차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혼다와의 합작 법인, 소니-혼다 모빌리티를 설립하며 전기차 출시 행보를 본격화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프로토타입 '아피라'는 지난 2023년 1월 CES에서 공개되었던 버전에서 한 결 가다듬어진 모양새로,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소니는 PS5의 듀얼쇼크 컨트롤러를 이용하여 아피라를 조종하여 무대 위로 올리는 퍼포먼스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사용자 경험을 위한 엔드 인터페이스는 언리얼엔진 3.5로 만들어지고, AI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Microsoft Azure OpenAI 서비스를 활용하며, 자동차 자체의 외형이나 스펙도 양산을 고려한 범위로 꽤 많은 조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소니는 2025년 양산, 2026년 소비자 인도라는 회사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TOGG - 터키가 만드는 두 번째 전기 승용차
이번 CES에서도 그러한 흐름은 이어졌습니다. <TOGG>는 CES에 참여한 터키의 전기차 회사입니다. 지난 2019년 자사의 첫 전기차 콘셉트 T10X를 공개한 이후 작년부터 정식으로 런칭하여 판매하고 있습니다. TOGG는 이번 CES를 통해 자사의 두 번째 모델, 세단 타입의 전기자동차 T10F를 공개했습니다. 이 차량은 2WD Standard Range 모델과 Long Range 모델, 4WD Long Range 모델로 나뉘며, 가장 높은 스펙의 모델인 4WD Long Range 모델 기준으로 435마력의 파워, 제로백 (0 to 100km) 4.6초, WLTP 기준 530km의 주행거리를 지니고 있는 자동차로 배터리 완전 충전까지 26분이 소요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빈패스트 - 자사 전기자동차의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다
베트남의 빈패스트에서도 CES에 부스를 내고, 자사의 신형 경형 전기차 콘셉트 VF3와 VF WILD를 공개했습니다. 본래는 베트남 자국 내 판매를 목적으로 개발했던 VF3이었지만, 경형 전기차가 글로벌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입니다. VF3은 1회 충전으로 210km를 주행할 수 있는 스펙으로, 일본을 비롯한 경차가 강세인 나라들에 대응할 수 있는 규격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같이 공개한 VF WILD는 미국 시장을 겨냥한 콘셉트 픽업트럭입니다. 경쟁하는 제품은 포드 레인저 급의 중형 픽업트럭들이죠. 아직까지는 이른 단계의 디자인 목업처럼 보이지만, 빈패스트는 이 차를 실제로 몇 년 내에 양산하여 주요 시장에 투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전기차 업황이 마냥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만, 시장에서 더 많은 경쟁자를 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진진한 일입니다.
MULLEN - 상용차 회사가 만드는 고성능 차량
그동안 전기 기반의 상용차를 만들어 온 뮬렌 (MULLEN)은 자사의 첫 번째 고성능 스포츠 크로스오버 EV <FIVE RS>를 발표했습니다. 해당 차량은 1000마력의 파워, 제로백 (0 to 100km) 2초 미만, 800V의 충전 시스템을 갖추고 100 kWh 용량의 배터리팩을 탑재한 고성능 차량이죠. 현재 개발 단계에 있으며 2025년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04. 수소경제를 위한 끝없는 도전
그동안 전기차가 쾌속질주를 이어가는 동안 '수소 자동차'는 참 외로운 존재로 남아 있었습니다. 1998년 이후 현대자동차가 야심차게 '수소 사업 진출'을 선언하고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이어왔지만,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과제였습니다. 2018년 현대차가 넥쏘 (NEXO)를 출시한 이후로 승용 수소 자동차는 더 이상 시장에 나오지 못했고. 수소 트럭을 개발해서 현대의 훌륭한 카운터파트너가 될 법했던 니콜라는 자사의 수소트럭 프로토타입을 언덕에서 굴려 동력이 공급되는 것처럼 교묘하게 속인 홍보영상을 만들어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CES 2024에서 현대는 '수소'를 다시 한번 테마로 들고 나왔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역량으로 수소의 생산, 운송, 그리고 사용까지 수소의 모든 라이프사이클에 현대가 함께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죠. 예를 들어, 현대 로템은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수소 리포머 공장을 건설하여 수소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현대 글로비스는 생산된 수소를 육로 혹은 해상으로 운송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수소 자동차를 생산하여 연료로 활용하고 있죠. 현대자동차그룹은 일련의 이 과정을 브랜드화, 기존 연료전지 브랜드였던 HTWO를 수소 밸류체인 사업 브랜드로 확대하였습니다.
현대만 이번에 수소를 부르짖었으면 조금 슬플 뻔했지만, 더 이상 현대는 외롭지 않습니다. 독일의 보쉬 (BOSCH)는 수소 연료전지에 이어 수소 엔진을 만들 것을 선언했습니다. 해당 엔진은 올해 출시될 예정으로, 이미 미국과 유럽, 중국 등지의 트럭 제조업체들로부터 일부 주문을 수주했다고 밝혀졌습니다. 미국의 상용차량 제조업체 PACCAR는 수소 연료전지 트럭을 공개했습니다. 사기 논란을 빚었던 니콜라는 '마침내' CES에서 고객에게 인도되는 최종 수소 트럭을 선보였습니다. 전기자동차의 질주가 다소 멎은 이 시점에 점화된 수소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이번 CES에서만 지속되고 끝날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는 진짜 실현되어 어떠한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가 되겠죠.
<3부에서 이어집니다>
'EVENT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CES2024 참관기] ④ 삼성전자, LG전자 부스 둘러보기 (4) | 2024.02.14 |
---|---|
[CES2024 참관기] ③ '로보틱스, 메타버스, 헬스케어, 산업' 트렌드 TOP 4 (1) | 2024.01.26 |
[CES2024 참관기] ① 'Everywhere' 트렌드 TOP 4 (3) | 2024.01.22 |
[2023 지스타 참관기] 이노베이션의 2023 지스타 (G*STAR) 참관기 (0) | 2023.12.12 |
[2023 월드 IT 쇼 참관기] 이노베이션의 2023 월드 IT 쇼 둘러보기 (0) | 2023.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