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블로그에는 모빌리티, 게임, IT산업 전반에 대한 포스트만 올라왔지만, 사실 이노베이션은 생활가전 분야도 담당합니다. 가전의 신제품 컨셉 개발부터 제품 사용성(UX) 평가, 관련된 라이프 트렌드 리서치에서 구체적인 디자인 CMF 조사까지 폭넓고 깊이 있는 조사들을 수행하고 있는데요. 그런 만큼 한 해의 리빙 산업 트렌드와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를 놓칠 수 없겠죠.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3일까지 5일간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서울 리빙 디자인 페어(SLDF)에 다녀왔습니다.
(*디자인하우스와 COEX, MBN 주최, 행복이 가득한 집 주관)
서울 리빙 디자인 페어는 국내 최대 규모의 리빙 전시회로, 가구/가전/인테리어/생활용품 등 각 분야를 선도하는 브랜드들이 참가해 대표 제품을 뽐내는 자리입니다. 올해는 역대 최대 규모의 450여 개 브랜드가 참가했습니다. 이번 리빙 디자인 페어에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과 “더 나은 삶”에 대한 고민이 구석구석 녹아 있었는데요. 자연주의, 쉼, 깊고 넓어진 취향 3가지의 키워드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자연주의: 지속가능한 디자인
올해 리빙 디자인 페어를 관통하는 큰 축 중 하나는 자연이었습니다. 전시 개막일에 맞춰 진행되는 세미나는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를 담고 있기 마련인데요. 이번 리빙트렌드세미나에서는 5개의 강좌 중 3개에 자연과 환경, 지속가능한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연사를 초청했습니다.
'새로운 집'에 대해 발표한 Space10의 CD 케이브 포우르는 사람과 지구에 더 나은 일상생활을 만들기 위해 환경적 도전을 디자인 관점에서 풀어내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시대가 디자인을 결정하는가?'라는 주제로 발표한 다소의 후정광 디자이너는 좋은 디자인은 생태계에 기여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고요. 보 헬버그 CMO가 소개한 '스웨덴 전통 디자인 브랜드 스트링 퍼니처의 여정'의 스트링 퍼니처는, 단순한 '굳 디자인(Good Design)'을 통해 자연을 담고 삶과 미래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한 줄기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삶의 전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리빙 업계에서도 자연과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으로 볼 수 있는데요. 이러한 주제에 발맞춰 전시에 참여한 업체들은 부스 곳곳에 풀, 돌 등 자연을 연상시키는 조형물을 배치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품도 예년보다 우드 소재가 많이 쓰였고,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제품이 많이 나왔습니다. 가드닝 제품이나 아웃도어 가구를 통해 집에 자연을 들여오려는 시도도 있었고요.
Back to 자연주의,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으로 회귀
최근 몇 년간 미드센추리 모던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형형색색의 알록달록한 디자인이 많이 보였죠. 올해는 미드센추리 모던풍의 가구도 많았지만, 동시에 순수하고 깨끗한 자연 톤을 강조하는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으로 돌아가는 양상도 함께 보였습니다. 주로 집의 전체적인 공간은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으로 가고, 포인트 아이템은 미드센추리 모던 풍으로 가는 식입니다.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은 다른 말로 자연주의 인테리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우드를 메인 소재로 사용해서 아늑하고 간결하게 만드는 게 특징입니다. 이번 서울 리빙 디자인 페어에서는 스트링 퍼니처, 무토, 앤트레디션 등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회사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Umage, 프리츠 한센 등 덴마크 디자인 회사 9곳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House of Danish Design이라는 부스는 페어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들 부스는 많은 관람객들을 끌어 모으며 인기를 입증했습니다.
자연 톤의 우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은 기타 국내외 브랜드에서도 공통적으로 관찰되었습니다. 책상, 의자, 선반, 장식장 등 큰 가구들에 우드가 많이 사용되면서, 테이블 상판도 세라믹이나 대리석보다 우드가 많이 쓰였습니다.
친환경 소재
자연에 무해하고 환경을 보존하는 소재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습니다. 친환경을 전면에 내세워 홍보하는 브랜드들이 많았는데요.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경영에서 삶의 전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집에서도 친환경 소재로 제작된 지속가능한 디자인 제품이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시몬스는 그 중 단연 으뜸이었습니다. 시몬스는 리빙 업계의 ESG 트렌드를 이끄는 대표적인 기업이라고 홍보하고 있는데요. 업계 최초의 ESG 침대 ‘뷰티레스트 1925’와 국내 최초 비건 매트리스 ‘N32’를 개발했기 때문입니다. 참가 업체 중 가장 큰 130평 규모의 부스에 친환경 매트리스를 늘어놓고, 곳곳을 ESG 메시지로 가득 채웠습니다. 32대의 대형 전광판에 재계, 학계, 연구기관 등에서 활약 중인 ESG 커뮤니케이터 22인의 인터뷰 영상을 띄우고, SNS 이벤트 참가를 통해 증정하는 에코백에도 “Bag to the Future”라는 문구를 크게 새겼습니다. 심지어 카탈로그도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생산된 ‘리시코 종이’를 사용했으니,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ESG에 진심임을 보여준 셈입니다.
이외에도 가전, 가구, 인테리어 브랜드를 막론하고 수많은 브랜드에서 친환경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네스트 미네랄 마루는 PVC가 전혀 없는 소재로 만들어진 친환경 미네랄 타일을 개발했습니다. 재활용 소재와 재생 가능한 소재로 생산되어 유해물질을 방출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죠. 바닥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고 평가받으며 리빙디자인어워드 ‘눈에 띄는 제품상’을 받았습니다. 그린무어는 스코틀랜드 바다에서 나온 리사이클 로프로 제작한 친환경 화분(ocean plastic pots)을 가지고 왔고, 페이퍼라이프에서는 친환경 펄프 소재를 성형해서 제작한 282 펄프트레이와 펄프 도시락을 일회용품 대체제로 제시했습니다. Ecosmart Fire와 Le Feu(르푸)는 굴뚝과 연통 등이 필요 없는, 바이오 에탄올로 작동하는 난로를 내세웠습니다. 디자인과 친환경 모두 잡은 제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성플랜은 재생 가림막 모듈을 활용해서 공간의 특성에 맞게 자유롭게 조립하고 해체해서 무한히 반복해 사용할 수 있는 Zero Waste Pavilion 구조물을 설치했습니다.
집에 자연을 들이는 모습, 가드닝
가드닝만 전문으로 하는 브랜드가 늘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플랜테리어나 분재 등 식물 재배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죠. 이제는 식물에 대한 애호가 가드닝의 영역까지 확장되어, 자연이 더욱 적극적으로 집에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브랜드들은 전시장 한복판에 정원을 구현해내며 전시장을 푸릇푸릇하게 물들였습니다.
영국 프리미엄 가드닝 스타일을 지향하는 편집샵 그린무어는 영국과 유럽에서 소싱한 제품들과 곳곳에 배치한 나무, 목가적인 구조물들로 영국식 가든을 재현했습니다. 식물과 구근은 물론, 삽, 갈퀴, 장화 등 본격적인 가드닝 장비를 소개하며 집에 자연을 들이고 어우러지게 살아가는 정원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했습니다.
서울 가드닝 클럽은 플랜테리어 모듈 OMG를 선보였습니다. OMG 모듈을 통해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도시 환경 속에서 손쉽게 한 뼘의 정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웃도어 가구
아웃도어 가구도 심심찮게 보였습니다. 아웃도어 가구는 더 이상 테라스나 마당을 꾸미거나 캠핑 시에만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소재와 디자인이 다양화되며 아웃도어 가구를 실내 인테리어에 매칭하는 것도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고 하네요.
아웃도어 가구로는 철제 제품이 가장 많았고, 자연 질감이 나는 소재가 많이 쓰였습니다. 돌을 연상시키는 점박이 패턴이나 자연의 질감이 나는 매트하고 거친 표면처리가 된 제품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요. 이런 소재 제품을 집안에 들이게 되면 자연과 집이 이어진 느낌을 한 층 더 줄 수 있겠죠.
아웃도어 가구를 집 안에 들일 때의 장점은 또 있습니다. 아웃도어 가구는 내구성이 좋은 만큼,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에 적합한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라탄, 패브릭으로 만든 아웃도어 가구가 반려 동물 가구에 인기 많다고 합니다. 늘어나는 반려동물 가구를 생각해보면, 앞으로 아웃도어 가구의 실내 진입이 더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쉼: 휴식 공간의 강조
현대인들은 만성 피로와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더 잘 쉬고,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슬립테크, *슬리포노믹스, **Spathroom와 같은 용어도 만들어졌습니다. 이번에 이노베이션이 미국 라스베가스까지 날아가 참관한 CES에서도 여전히 슬립테크가 주요하게 다루어졌는데요. 리빙 디자인 페어 역시 집 안에서 휴식하는 공간을 중요하게 다뤘습니다.
(*슬리포노믹스: Sleep+Economics. 숙면을 위해 많은 돈을 지출함에 따라 수면 산업이 성장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
(**Spathroom: Spa + Bathroom. 화장실을 럭셔리한 미니 스파처럼 조성하여, 호텔 화장실과 같은 셀프 케어 공간으로 이용하는 트렌드를 일컬음)
침실
침실은 집에서 쉼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대표 공간입니다. 침실의 대표적인 가구는 침대죠. 이번 리빙 디자인 페어에서는 매트리스가 곳곳에 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수면을 돕는 기능이 탑재된 것은 물론, 정형화된 형태에서 벗어난 제품을 통해 기능이 중요한 기기들도 디자인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침실도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제시했습니다.
기능 측면에서는 모션베드를 들 수 있습니다. 소닉슬립과 까르마, FEY침대 등 다수의 수면 전문 브랜드에서 모션 베드를 선보였습니다. 매트리스 각도를 조절하는 것을 시연하면서, 수면 습관이나 생활 양식에 맞춰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가누다와 인수합병한 까르마는 기능성 베개를 함께 제시하며 더 잘 쉴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디자인 측면에서 접근한 침대의 대표주자는 이탈리아 침대 브랜드 돌레란(Dorelan)입니다. 시그니처 제품인 타원형의 Pebble 침대를 선보이면서 그동안 고정 관념처럼 굳어왔던 ‘매트리스=정형화된 네모 모양’이라는 공식에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침대 주변에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기둥과 조각상을 두어, 침대가 놓이는 공간도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제시했습니다.
코웨이 또한 자체 Sleep & Healing 브랜드 Berex를 통해 디자인을 더한 안마 베드와 안마 의자를 내놓았습니다. 안마 베드는 접어서 소파처럼 연출할 수 있게 했고, 안마 의자 Pebble Chair는 이름처럼 조약돌을 닮은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이번에 ‘눈에 띄는 제품상’을 수상한 Pebble Chair는 머리 받이로 안마 돌기를 가릴 수 있게 하고, 배나 다리를 안마할 수 있는 안마 돌기는 쿠션에 숨겨서 라운지 체어처럼 보이게 연출했습니다. Berex가 표방하는 가치가 “휴식 그 이상의 가치”임을 고려해보면, 코웨이는 디자인에서 그 답을 찾은 듯 보입니다.
화장실
화장실은 비교적 최근 인테리어에 힘이 많이 실리기 시작한 공간이죠. 실제로 저희가 평소 전문가 인터뷰를 진행해보면, 호텔 같은 화장실을 만들고 싶어서 묵직한 그레이톤의 큰 타일, 고급 니켈 수전이나 호텔식 매립 수전, 고급 젠다이 등을 요청하는 고객이 많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그에 더해 이 공간에 휴식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Piloto는 욕조 옆에 스탠바이미를 매치했습니다. 욕조 트레이에는 종이 꾸러미를 함께 제시했죠. 리빙 페어에 참여하는 업체들은 통상 각 제품이 집 안에서 어떻게 놓일 수 있을지, 또는 공간에서 가구를 어떻게 경험하면 좋을지 공간 맥락을 제공하기 위해 부스 설치와 제품 배치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이를 고려해볼 때 Piloto가 제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은 명백합니다. “Spathroom”이라는 신조어가 있듯, 화장실을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쉬어 가고 힐링할 수 있는, 포근하고 머무르고 싶은 우리 집 안의 작은 스파로 조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화장실이 휴식 공간으로 조명을 받게 되면서 화장실 인테리어 선택지의 폭도 더 넓어졌습니다. 세면대 거울에 화장대처럼 조명을 넣은 제품도 볼 수 있었고요. 세면대 형태도 기존의 관이 달린 모양에서 벗어나 원통형, 기울어진 경사면이 있는 판판한 형태 등 다양해졌습니다. 그에 따라 하단부를 수납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품도 나왔습니다. 세면대 컬러도 획일적인 흰색에서 벗어나, 컬러가 들어간 제품도 많이 보였죠.
수전도 형태와 길이를 각양각색으로 만들어 차별화를 시도한 제품들이 보였습니다. 특히 덴마크의 Vola는 컬러풀한 색조의 수전을 선보였고, 태국대사관 상무관실에서는 나무가지를 형상화한 샤워헤드를 제시하며 화장실에 다양한 재미 요소를 넣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화장실에서의 휴식의 중심인 욕조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이번 리빙 디자인 페어에서 곡선의 미가 강조된 제품을 두루 볼 수 있었듯(욕조, 침대, 소파 등), 직선보다는 곡선으로 이루어진 형태가 많았습니다. 컬러는 베이지, 그레이, 레드 등 다양한 색을 활용해 고급감을 형성했습니다.
깊고 넓어진 취향: 더 디테일한 개성의 반영
팬데믹 이후 취향이 극세분화가 가속화되면서 2~3년 전부터 '파편화된 취향', '마이크로 트렌드', '나노사회'라는 키워드가 많이 회자되어 왔죠. 이렇게 개인의 취향을 중시하는 행태는 여전히 진행 중으로, 시간이 갈수록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올해 리빙 디자인 페어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현상 중 하나가 바로 개인의 개성을 반영할 수 있는 제품 종류가 더욱 다양해졌다는 것인데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깊어지고 넓어진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증가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4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여전히 넓었던 컬러 스펙트럼
집에 어떤 컬러를 들이느냐는 집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차분한 컬러 제품을 들여서 올해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공간 속에 묻어가게 하기를 원할 수도 있고요. 또 어떤 사람은 집에 좋아하는 색을 왕창 들여와서 키치하거나 감각적인 공간을 만들 수도 있겠죠. 아니면 취향에 따라 강조하고 싶은 제품들만 컬러를 쓰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요. 이런 취향에 두루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컬러의 제품이 나오는 것은 물론, 색상을 원하는 조합에 따라 구성할 수 있는 Bespoke 가전도 나온 바 있습니다. 이번 페어에서도 역시 차분하고 심플한 컬러부터 다채로운 형형색색의 아이템까지, 다양한 취향에 디테일하게 대응할 수 있는 넓은 컬러 스펙트럼의 가전과 가구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심플한 컬러의 제품은 무광 피니싱과 함께 주로 매칭되었습니다. 집 인테리어와 잘 어우러지는 차분한 컬러에 광 없는 소재, 단순한 디자인의 조합은 가전과 가구의 존재감을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제격이죠. 대표적으로, 얇고 긴 단순한 직사각형 모양에 차분한 톤을 사용한 코웨이 정수기와, 마찬가지로 심플한 디자인에 무광 톤 다운된 컬러를 쓴 제니퍼룸의 전기 밥솥이 그 예가 되겠습니다.
반면, 다채로운 형형색색의 제품은 더욱 독보적으로 눈에 띌 수 있도록 유광 피니싱처리 된 제품이 많았습니다. 이 경우 가전이나 가구 그 자체를 개성과 취향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포인트 아이템으로 쓸 수 있겠죠. 스메그의 계보를 잇는 컬러풀한 소형 냉장고들과, 정형화되지 않은 과감한 형태의 스툴, 의자, 오브제가 그 예입니다.
Bespoke의 확대
사실 가구는 대량생산 이전의 시기를 고려하면 원래 주문 제작의 영역이기는 합니다만, 아무래도 대량생산이 보편화된 현대에는 양산형 가구들을 더 쉽게 접할 수밖에 없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USM Haller를 위시한 모듈러 제품들이 유행하며 누구나 쉽게 커스텀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FlatPoint의 DOB 서비스 등 모듈러 제품의 커스텀 서비스를 볼 수 있었는데요. 올해 주목할 점은, Bespoke가 모듈러 제품을 넘어 다른 가구, 심지어 마루의 영역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리스 디자인에서는 의자 좌판의 색상을 취향대로 조합할 수 있는 클로버 체어를 선보였습니다. 의자 좌판부를 3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원하는 색상으로 교체할 수 있는 모델입니다.
구정마루는 컬러 플레이를 통해 원하는 색 조합으로 마루를 구성할 수 있게 한 적 있는데요. 이번에는 직사각형 모양에서 탈피한 곡선형 마루, ‘리니어 비스포크 마루’를 공개했습니다. 마루 모양까지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도록 고객의 선택지를 디테일하게 넓힌 셈입니다.
미 사용 순간까지 고려한 디자인
이번 페어에서는 가전, 가구, 도구의 미 사용 순간에도 집중한 제품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순간에도 더 예쁘게 보일 수 있도록, 기존 제품들을 공간 속에서 더 예쁘게 놓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La Finito(라피니토)는 멋들어진 형태로 운동도구를 제작하여 그 자체로 오브제가 될 수 있는 덤벨과 케틀벨을 만들었습니다. 사용할 때는 우리 몸을 아름답게 하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덤벨이 놓여있는 공간을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셈입니다.
Kustem(커스템)에서 트롤리형 TV 거치대를 제시했습니다. TV를 꺼둘 때 보이는 검은 화면이 거슬릴 수 있는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TV 제조사들에서 갤러리 사진을 띄울 수 있는 기능을 만들기도 했고, 삼성전자에서는 아트월처럼 활용할 수 있는 The Frame을 출시한 바 있죠. 커스템에서는 뒷면에 보드가 달린 트롤리형 TV 거치대로 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순간에는 보드면이 앞을 향하게 돌려놓는 방법입니다.
자매품으로 각종 TV 다리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커스템과 빌티니 등 TV 다리만 종류별로 생산하는 업체들에서는 바퀴 달린 형태, 천장 거치식 형태, 가구장에 올려두는 형태 등 온갖 형태의 다리를 선보였습니다. 사실 TV에 다리를 부착하는 개념은 낯설지 않은데요. 옛날 옛적 브라운관 TV부터, 삼성전자의 Serif TV나 LG전자의 클래식 TV까지 가전 제조사에서 다리를 붙여 가구 같은 느낌을 연출한 적 있기 때문이죠. 바퀴 달린 스탠드형으로 TV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던 LG전자의 스탠바이미도 같은 맥락이고요.
다만 가전 제조사가 아닌 라이프스타일 제품 브랜드에서 TV 다리를 집중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TV 같은 가전을 놓는 방식도 개성을 보여주는 영역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TV 뒷면에 연결된 케이블 선이 보이지 않도록 신경 쓴 디테일을 보면 더욱 확실하죠.
다리를 붙인 다른 제품들도 있었습니다. 스피커 회사 Ruarkaudio나 Komma의 공기청정기도 다리를 단 제품을 선보이며 무게감을 덜어내고, 이동이 용이하게 만들었습니다. 인테리어에 포인트를 줄 수 있는 다리 달린 쓰레기통과 다리 달린 화분도 있었습니다.
올해의 신박한 디자인들
매년 새로운 제품이 등장하지만, 올해 특히 눈길을 끌었던 제품들이 있었습니다. 이색적인 외관 디자인이나 형태는 물론, 소재에서도 전형성을 탈피하면서 소비자들이 고를 수 있는 옵션을 한 층 더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n%의 초음파 가습기는 얼핏 보면 전기포트처럼 보입니다. iF 디자인 어워드 2024 수상작인데요. 심플한 외관만큼이나 구조가 단순해서 세척이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제법 큰 규모의 부스에 이 제품 한 종류만 진열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을 끌었던 제품입니다.
블룸즈베리는 시청각을 결합한 스피커 스크린을 들고 나왔습니다. 영화관에 스크린을 공급하는 회사인데요. 빔스크린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결합시켜서 영상과 같은 지점에서 소리가 나게 했습니다. 입체감과 현장감을 강화시켜, 홈씨어터를 영화관 수준으로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새로운 옵션을 제시했습니다. 프로젝터가 별도로 필요하다는 한계는 있었습니다.
FEY침대는 리프트업 침대를 가져왔습니다. 침대 밑을 수납 공간으로 만드는 시도는 이전에도 많았지만, 이 제품은 매트리스를 통째로 들어올려버립니다. 수납공간이라는 티를 내지 않으면서 공간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은 사람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했습니다.
소재 측면은 소파에서 과감한 시도가 많이 보였습니다. 약 2년 전부터 패브릭 소파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었죠. 이제는 패브릭을 넘어 더 질감이 살아있는 소재들을 사용한 제품도 심심찮게 보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복슬복슬한 긴 털이 달린 소재와 빌로드 소재 소파는 사람들이 한 번씩 만져보고, 앉아보기도 하며 많은 발길을 끌어 모았습니다. 이런 독특한 소재에 더해, 올해 전반적으로 밝고 튀는 색상과 존재감이 큰 패턴도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SLDF를 되돌아보며
이번 리빙 디자인 페어는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느껴졌습니다. 가전 제품이나 가구, 오브제같은 리빙 제품들은 제품 자체의 생김새만으로는 집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보일지 감을 잡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부스 조성을 통해 각 제품을 공간 속에서 어떻게 경험하면 좋을지 제시를 해줘야 하죠. 이번 페어는 그런 점에서 부스 퀄리티가 높았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의 성격과 주력 제품의 정체성을 경험할 수 있는 장치를 부스 곳곳에 심어 둔 곳들도 있었습니다.
시몬스는 잘 알려져 있듯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제품을 지향합니다. 부스 공간에 들어서자 마자 발끝에서부터 이 슬로건을 체감할 수 있었는데요. 부스 바닥에 푹신한 하얀 카펫을 깔아 두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 시몬스 팩토리의 롤링 테스트기를 그대로 가져와서 140kg의 원통형 롤러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줬죠. 충격 흡수를 형상화해서 제품 지향점에 대한 진정성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장치였습니다.
미니 라이프 가전 브랜드인 미닉스는 수퍼마리오를 연상하게 하는 키치한 부스 디자인으로 많은 시선을 집중시킨 부스 중 하나였는데요. 이번 주력 상품인 음식물 처리기 The Flender(더 플렌더)를 아주 효과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제품을 가운데에 두고, 양 옆에 컨테이너 벨트를 연상시키는 영상을 재생해서 제품의 컨셉을 직관적으로 인식시켰습니다.
이벤트도 무분별한 "SNS 좋아요"가 아닌, 제품 UX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형태로 설계하여 제품을 소비자에게 더욱 깊게 각인시켰습니다. 더 플렌더 제품 모형에 인형을 던져 넣어서 골인시키면 상품을 주는 형태였는데요. 더 플렌더 아래쪽에는 작은 블록들을 늘어놓아 음식물이 처리된 후의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키치한 컨셉과 잘 매칭되는 재미있는 이벤트를 통해 제품의 컨셉이 자연스럽게 이해되도록 한 것이죠.
한편 일부 조명 브랜드들은 차별화를 위해 부스 공간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스웨덴 조명 브랜드 Wästberg(베스트버그)는 조명들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일 수 있도록 가벽에 창을 내어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Lumir(루미르)는 부스 천장을 막아서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인 은은히 공간을 감싸 안는 따뜻한 느낌이 더 잘 드러나도록 했습니다. 향기도 함께 사용해, 은은한 조명이 주는 포근하고 안락한 느낌을 극대화했습니다. 다만 조명 브랜드는 제품에서 좀 더 차별화할 필요가 있어 보였습니다. 한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이 유사한 모양들이 너무 많아서 브랜드 별로 구분이 잘 가지 않았고, 그나마 부스 경험을 차별화한 브랜드 몇 개만 기억에 남는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내년에는 더 좋은 제품들과 부스 경험을 기대해봅니다.
'EVENT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CES2024 참관기] ⑥ CES 2024를 마무리하며 (1) | 2024.03.24 |
---|---|
[CES2024 참관기] ⑤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부스 둘러보기 (1) | 2024.03.13 |
[CES2024 참관기] ④ 삼성전자, LG전자 부스 둘러보기 (2) | 2024.02.14 |
[CES2024 참관기] ③ '로보틱스, 메타버스, 헬스케어, 산업' 트렌드 TOP 4 (1) | 2024.01.26 |
[CES2024 참관기] ② 'Mobility' 트렌드 TOP 4 (2) | 2024.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