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글들을 먼저 올리고 CES를 참여하며 느꼈던 점을 올리려니 어느새 3월이 되었습니다.
[1] <CES 2024> ① 'Everywhere' 트렌드 TOP 4
[2] <CES 2024> ② 'Mobility' 트렌드 TOP 4
[3] <CES 2024> ③ '로보틱스, 메타버스, 헬스케어, 산업' 트렌드 TOP 4
[4] <CES 2024> ④ 삼성전자, LG전자 부스 둘러보기
[5] <CES 2024> ⑤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부스 둘러보기
[6] <CES 2024> ⑥ CES 2024를 마무리하며
CES 행사는 대기업들이 모여 있는 주요 홀, 소싱&액세사리 전문 홀, 그리고 스타트업들이 모인 유레카 파크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사실 대기업의 전시는 유튜브나 미디어 커버리지를 통해 대부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5개의 게시글에 걸쳐 저희가 다루었던 내용만 훑어봐도 CES 대형 전시관을 거의 대부분 확인할 수 있죠. 소싱&액세서리는 거의 중국 업체들의 차지입니다. 사실 한국의 업체들이 라스베이거스까지 가서 중국 업체들이 모여 있는 소싱 관을 시간들여 구경해야 하는 이유는 크지 않습니다. 차라리 30만원 정도 비행기값을 투자해서 중국 심천으로 가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심천의 소프트웨어 거리나 화창베이 전자상가를 둘러보며 비즈니스 기회를 찾아봐도 됩니다. 저도 작년과 올 해 두 번 심천을 방문했고, 화창베이 전자상가를 둘러보며 다양한 제품들을 살펴보며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정제되지 않은 원석을 만나는 유레카 파크
사실 진짜 CES의 핵심은 유레카파크입니다. 유레카파크에서는 미래 비즈니스에 활용할 만한 유용한 기술을 가진 숨은 업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트렌드'를 파악하기는 다소 작고 산발적인 범위이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과도 같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업체들이 많고, 그러한 업체들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기회를 발굴할 수 있습니다.
저희 본부장님의 의견을 인용하자면:
보통 CES에 오면 첫 날과 둘째 날은 세계 스타트업들이 모인 베네치안 호텔의 유레카 파크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무엇보다 비즈니스 한 번 일으켜보겠다고 있는 살림 없는 살림 털어서 먼 땅까지 와서 부스를 차리고 분투하는 이들의 절박함, 절실함을 함께 느끼고 공감하며 우리의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강덕용, HRC Innovation Division 본부장
올해 CES에는 정말 많은 한국 기업들이 참여했습니다. 국가 단위로 따지면 참가국 중 세 번째 규모였다고 하죠. Innovation Award를 수상한 한국 기업도 많고, 유레카 파크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한국 통합 관이 있었습니다. 어딜 가나 태극기를 볼 수 있었고, 어딜 가나 한국인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최전성기의 코엑스 World IT Show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글로벌 전시회에 나왔다는 타이틀이 필요했던 것일지, 아니면 이런 행사에 나오지 않으면 한국인 바이어나 관계자를 만날 수 없던 것인지, 글로벌에 대응한다기보다는 현장에 방문한 한국인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많은 지자체들 역시 '기업 유치 목적'으로 CES에 참관했는데, 본질과는 다소 거리가 먼 모습이었습니다. CES에 참가해서 해외 사업 기회를 창출하고, 파트너십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지, 단순히 CES에 부스를 냈다는 보도자료를 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수많은 한국 기업의 CES 참가는 빛 바랜 성적표가 될 뿐이겠죠. 내년 CES는 보다 내실있는 한국 기업들이 철저하게 준비해서 해외의 바이어들을 두드렸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전시회의 쇠퇴 속, 어떻게 CES는 최대 규모로 개최될 수 있었을까
MWC,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10년 전에는 국가별 지역별 타겟별 다른 스마트폰 모델이 존재했습니다. 파티에서 개성을 뽐내기 좋아하는 인도인들을 위해 후면 LED 면발광 기능이 탑재된 휴대전화, 비즈니스맨을 위한 쿼티 타입 키보드가 탑재된 휴대전화, 여성들을 위한 여성 건강 기능이 탑재된 휴대전화가 전부 각기 다른 모델로 출시되었죠. 삼성의 갤럭시S 파생 시리즈만 해도 수십가지나 되었습니다. 중국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갤럭시 C 시리즈, 인도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갤럭시 M 시리즈 같은 제품들이 있었지만, 이젠 사라졌거나, 기존 다른 라인업 제품을 살짝 커스텀한 수준이라 유명무실하죠. 요즘은 전 세계에 동일한 기능 동일한 생김새의 갤럭시S24 시리즈가 출시되고, 갤럭시A시리즈가 출시되고 있습니다.
확실하게, 오프라인 전시회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위상을 갖기 어렵습니다. 코로나의 길고 긴 터널이 끝나서 반짝 오프라인 전시회 수요가 회복된 듯 보이지만, 과연 이 수요가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수요일지 많은 전문가들이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전시를 위해 전시 구조물을 만들고 폐기하는 일은 친환경적이지 않고, 행사를 위한 데모를 만들고 오프라인으로 시연하는 일은 확실히 비효율적입니다. 그저 온라인으로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동영상 자료를 탑재하고, 상품 페이지를 올려 두면 전세계 사람들이 와서 자신들의 기술과 제품을 구경할 수 있는데,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오프라인 행사에 나와야 할 이유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 CES는 코로나 회복기를 지나서도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될 수 있었습니다. CES, 소비자 가전 박람회. 가전 시장이 철저하게 글로벌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각 나라의 라이프스타일이 점차 비슷해지면서 나라마다 다른 제품이 출시되는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각 나라의 특징을 반영한 하드웨어 신제품을 출시하는 대신, 소프트웨어 기능으로 지역별 특화 기능을 살리는 쪽으로 시장이 재편되었죠. 어느 나라에 가도 비슷하게 생긴, 비슷한 기능의 삼성과 LG, GE의 세탁기와 건조기가 팔립니다. 어떻게 이 쇼는 살아남고, 오히려 규모를 확장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연결'이 주는 가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CES는 '기술과 산업의 연결과 교차'가 주는 가치를 증명해냈기 때문에 성공적인 행사가 될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CES는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기업에서 서로간의 파트너십을 맺고, 기술을 교류하고, 앞으로의 사업 방향성을 도모하는 자리입니다. 소규모 스타트업들은 리서치 컨설팅 업체를 만나 자신들의 제품의 완성도와 소비자 수용도를 평가하기 위한 단초를 만들고, 대기업들은 작은 부품업체나 괜찮은 아이디어의 스타트업들을 만나 협력과 투자를 논의합니다. 제조, 생산, 컨설팅, 마케팅, 미디어까지 모든 분야의 관계자들이 모이고, 수많은 명함 교환이 이루어집니다.
전시회의 가장 큰 홀에는 B2C 제품들을 전시하지만, Private Booth 혹은 미팅룸과 같은 닫힌 공간에서의 전문적인 B2B 교류도 많습니다. 행사가 종료된 이후 곳곳에서는 초청장을 베이스로 한 Private Party가 알려 기업인들간의 교류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번에 저희 이노베이션의 이현구 부장님도 현장에서 외국의 리서치 업체 담당자의 초대를 받아 Private Party에서 해외 업체 담당자를 만났고, 이후 후속 미팅을 이어가기도 했죠. 업체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미디어들도 한 자리에 모입니다. 하루에도 몇 천개의 영상과 콘텐츠가 생산되고, 또 이 콘텐츠를 찾아보기 위해 눈을 밝히고 있는 전 세계 수많은 기업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산업군이 교차하는 전시회는 세상에 흔치 않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이런 '종합' 전시회에 참여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며 온라인에서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세컨더리 리서치를 통해 찾아낼 수 있게 된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국가별로 출장이 이어지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각 기업의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며 온라인에서 개별적인 제품과 개별적인 기술을 볼 때는 상호간의 시너지 효과를 알 수 없지만, 모든 기술을 모아놓고 보면 서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기술이 보이고, 각 기술이 교차하며 특이점을 만들어 내는 지점이 보입니다. AI가 모빌리티와 교차하고, 모빌리티는 퍼스널 디바이스와 교차하고, 퍼스널 디바이스는 가상 공간과 교차하는 트렌드가 보이는 겁니다. 이번 CES 기간에도 다양한 기업들의 총수들이 방문해서 전시관을 둘러봤습니다. 작년 CES에 현대자동차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전세기를 빌려 R&D, 사업기획, 마케팅 부문 등 다양한 업무를 진행하는 직원들을 모아 200규모의 시찰단을 투입하기도 했죠. 비록 전 세계를 단일 제품으로 대응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할 지라도, 출장을 가고, 현지의 분위기를 직접 체험하고, 현지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 여전히 기업의 미래 제품 전략을 세울 때 필수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CES를 주최하는 CTA(전미 소비자 기술 협회)는 그런 전시회의 강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변화된 CES를 통해 자신들이 '기술의 교차점'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거 '가전제품'을 전시하던 고전적인 정체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기술 기업이 각자의 가장 최신 기술을 들고 연 초에 모여, 다양한 기술이 교차되며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현장을 보여주는 콘셉트로 행사의 방향을 크게 바꾼 것입니다. 그래서 CES에 자동차 회사들이 참가하고, 인터넷 기업이 참가하고, 반도체 칩셋을 만드는 회사가 참여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다양한 회사가 모여 각자의 기술을 뽐내다 보니, 마이크로한 기술 하나 하나가 모여 하나의 매크로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신기한 광경을 목도하게 된 것입니다. 진정한 '오픈 이노베이션'이 일어나기 위한 인큐베이팅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죠.
CES 특집 포스트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이 되어서야 1월 초에 경험했던 수많은 기술들에 대한 설렘과 놀람이 어느정도 정리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환경을 몸소 체험해보기 위해서라도 인생에 한 번쯤은 CES를 경험해보는 것이 개인의 시야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말에 적극 공감합니다. 그러는 동시에 약간의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예전의 기술 쇼는 먼 미래의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소 허무맹랑할지라도 미래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전시들이 많았죠. 기술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관람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가짜 기술을 동원하여 눈속임을 하는 회사들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CES 2024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근미래'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AI'라는 가장 초현실적인 주제를 바탕으로, 근미래에 AI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Use-Case를 볼 수 있었죠. 기술이 발전하며 우리가 '공상'으로만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게 되며 CES가 그만큼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전시회가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쇼를 위한 전시'에서 정말 실용적인 기술을 위한 전시로 탈바꿈하는 모습은 고무적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인류에게서 상상력과 희망을 빼앗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약간의 씁쓸함이 남은 CES 2024였습니다.
'EVENT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 서울 리빙 디자인 페어 참관기 (1) | 2024.04.03 |
---|---|
[CES2024 참관기] ⑤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부스 둘러보기 (1) | 2024.03.13 |
[CES2024 참관기] ④ 삼성전자, LG전자 부스 둘러보기 (2) | 2024.02.14 |
[CES2024 참관기] ③ '로보틱스, 메타버스, 헬스케어, 산업' 트렌드 TOP 4 (1) | 2024.01.26 |
[CES2024 참관기] ② 'Mobility' 트렌드 TOP 4 (2) | 2024.01.23 |